동화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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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PMI 바울 사역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느 계산대의 대기자가 가장 적은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옳거니.’ 적당한 곳이 눈에 띄자 재빠르게 다가갔다. 앞사람의 계산이 끝나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려는데 직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줄을 서세요” 아차, 마음이 급해서 앞만 보고 가느라 옆에 선 세 명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부끄러움은 온전히 나의 몫. 질서는 편하고 빠르고 아름다운 것이라던 공익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다. 각 진영마다 준비팀이 구성되고, 전략을 세우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자신의 정치 이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어느 후보팀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사회적 미래를 위해 합류하는 사람도 있다. 지지했던 후보가 낙선하면 야권인사로 분류되어 또 다시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후보 당사자 못지 않게 후보 진영 사람들의 눈치 싸움, 자리 찾기 싸움이 치열하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기회주의처럼 들리지만, 리더를 잘 선택하고 돕는 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성공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자질)을 같은 초성 7개로 나열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깡(용기), 끼(재능), 꼴(품위), 꾀(지혜), 꿈(비전), 꾼(전문성) 그리고 끈(관계)이었다.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 못지않게 NQ(Network Quotient, 관계지수)가 중요하다고 한다. 친구가 많다는 것, 좋은 친구가 많다는 것은 중요한 인생 자산임이 분명하다. 관계지수가 좋다는 말은 “줄이 많다”는 의미이며, 수직적 관계뿐 아니라 수평적 관계도 잘 유지한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면 NQ를 높일 수 있을까? 이른바 황금률이라고 알려진 성경말씀이 교훈이 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사랑도 도움도 주고 받는 것이고, 성탄 카드도 주고 받는 것이다. 주고 받은 것, 받고 준 것에 대해 손해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야 한다. 시차가 있더라도 신세는 갚아야 하고, 물질로든 정신적인 것으로든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관계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삶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동네 공원 입구에서 애완동물에게 목줄을 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는 경고문을 보았다. 위험 때문에 또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밖에 나갈 때에는 목줄을 한다. 목줄을 좋아할 개는 없다. 보호자도 개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다. 자유는 인간과 동물 모두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무한정의 자유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웠다. 자유와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극적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자유에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간은 깨달았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약속이고 규칙이며 형벌이라는 줄이다. 이런 의미의 줄은 통제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불편함이 받드시 나쁜 것일까? “줄은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의 사태를 위한 예방 조치다. 방향과 속도가 잘 맞는다면 텐션은 없어질 것이고, 이로 인한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줄로 연결된 두 주체를 보며 저들이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고층빌딩 외벽을 청소하는 사람이 매달린 것도 줄이며, 절벽 이곳에서 건너편으로 긴 장대로 균형을 잡으며 건너가는 서커스 단원이 밟는 것도 줄이다. 고난도 액션 연기를 보여 주는 스턴트맨의 몸에 연결된 것도, 구조헬기에서 사고 지역의 조난자에게 내려 주는 것도 줄이다. 아! 동화 속에서 호랑이에게 쫓기는 오누이가 붙잡은 것도 하늘로부터 내려온 줄이다.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줄을 꽉 잡아”라는 명령어가 가득할 것이다. 놓치면 죽음이요, 끊어지면 대형사고일 테니까.

우리는 줄(line)로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상하좌우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에 그물(Net)이라고 할 수도 있다. 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통로라는 사실이 강조되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희망과 생명이 더 많이 나누어져서 줄이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알기 원한다. 나를 보호해 주고 살려 주는 생명줄이라면 끝까지 단단히 잡고 살아가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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