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zor clam
razor clam

김홍준 장로(WA)

내가 사는 곳은 워싱턴 주 서부 태평양 연안에서 25마일 떨어진 울창한 송림이 우거진 산골이다. 비가 하도 많이 오고 흐린 날이 많아서인지 카운티 이름도 Grays harbor이다.
   
이 지역은 많은 비와 비옥한 땅이 어우러져 양질의 목재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어서 옛날에는 수많은 원목 운반선들이 북적이고 시애틀이나 포틀랜드보다 거대한 항구 도시였다. 열대우림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어도 온대우림이라는 말은 생소한데, 세계적으로 5곳이 있는 중에 이곳에도 있다. 이 지역을 들어오는 입구에는 “Lumber Capitol of the World” 라는 커다란 간판이 서 있다.
   
사계절 하얀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올림픽 마운틴은 국립공원으로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고,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는 곰과 쿠거, 사슴 등등 많은 야생동물과 다양한 식물들이 수많은 토산물을 제공하는 살기 좋은 곳이다. 사계절 높은 산에서 눈이 녹아 흐르는 하천에는 다양한 어족들이 우글거린다.
   
봄에는 사람 키보다 웃자라기도 하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돋아나고, 가을이면 숲속에 노랗게 돋아난 꾀꼬리버섯, 송이버섯을 비롯하여 각종 버섯이 풍성하여 전문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250여 파운드를 수확한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이 좋아하는 송이버섯을 싫어하여 너희나 먹으라고 가져다 주기도 한다.
   
올해 유난히 무더웠던 탓인지 연어를 많이 잡은 단골 손님들이 가져다 주는 연어가 하도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나누기에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서로 왕래하기도 어려운데 두어 시간 떨어진 도시에 사는 분들과 나누기도 힘들다.
   
이 지역  바닷가 백사장에는 Razor Clam이라는 조개가 서식하는데 맛이 좋아 한국말로는 맛조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러 해 전에 삽을 들고 가서 잡으려 해도 얼마나 빨리 도망을 가는지 한 마리도 못 잡아서 다시는 잡을 생각을 안 했다. 주 정부에서 남획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찌나 규정을 까다롭게 만들어 놓았는지, 9월부터 12월 말까지 때로는 오전에만 때로는 오후에만 오늘은 이 지역 해안 내일은 다른 해안에서 잡을 수 있도록 정해졌다. 물이 많이 빠지는 날에만 잡을 수 있어서 4개월 중 62일만 잡을 수 있다.
   
손님들이 종종 가져다 주는데 얼마나 맛이 좋은지 모른다. 얻어먹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잡아보기로 했다. 월마트에 가서 Clam Gun이라 하는 도구를 샀다. 직경이 12cm 길이가 70cm 되는 원통형이고, 위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고정된 뚜껑에는 손잡이가 있고 엄지손가락 옆에는 1c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기 구멍이 있어서 이 기구를 힘껏 힘을 주고 모래사장에 밀어 넣은 후 작은 구멍을 엄지손가락으로 막고 끌어올리면 모래와 함께 맛조개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땅속 30~40cm 깊이에 조개들이 만들어 놓은 터널 속으로 잽싸게 헤엄쳐 도망가기도 한다.
   
둥글넓적하고 길쭉한 양쪽 조개껍데기를 연결하는 힘살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바닷물에 흠뻑 젖은 고운 모래 속을 날아다닌다. 조개 구멍을 발견하고 천천히 clam gun을 박아넣으면 도망가다가 껍질이 걸려 잘려 나오기도 하고 허탕을 치기도 한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물에 흠뻑 젖은 백사장이라 해도 계속 시도하다 보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첫날이라 미리 와서 잡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설명을 들어도 어설프고 많이 잡지 못하니까 자기들이 잡은 것 중에서 몇 마리를 준다. 두어 시간 잡고 나오면서 세어 보니 19마리다. 20마리 넘으면 벌금을 내야 하니까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반기며 얼마나 많이 잡았느냐고 한다. 싱싱할 때 씻어서 회로 먹자고 한다. 몇 마리를 손질하고 잘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달콤새콤한 초장에 푹 찍어서 입에 넣으니 그동안의 피로가 날아가고, 너무 싱싱하여 아삭아삭하는 맛과 쫄깃한 맛, 고소한 맛이 부위별로 다르게 느껴진다. 
   
맛조개는 상업적으로 잡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서 마트에서 사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지역에 사는 부지런한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조개이다.
   
친절한 손님들이 가져온 맛조개를 잘 손질하여 조개젓을 담았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무슨 요리든지 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손질하며 칼로 자를 때 움찔움찔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중국 조개젓이 인체에 해롭다는 보도가 나간 후 한국 마켓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럴 때  조개를 잡아다가 만든 요리는 정말 신선하고 깨끗하다.
   
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려 불편하기는 해도 덕분에 울창한 숲이 있어 아름다운 청정지역에서 풍성하고 신선한 자연의 선물을 누리고 즐기며 살 수 있도록 베푸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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