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르

이문재 시인

아직 못 배웠다
화내지 않고 화내는 법
번 것보다 적게 쓰는 법도
여태껏 몸에 익히지 못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선산 땅을
결국 지키지 못했고 몇몇 벗에게
진 빚도 몇 년째 갚지 못하고 있다
친한 치과의사도 없고
한밤중에 연락할 수 있는 변호사도 없다
나는 집값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지
주식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무엇인지
정치와 정치인 국민과 국가 사이가
왜 그토록 멀기만 한 것인지
인간과 인류 인류와 천지자연 사이가
왜 이토록 아득해졌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 되짚어보면
선물처럼 받은 은혜가 없지 않다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내가 준 것보다 내가 받은 것이 훨씬 많다
하늘과 햇빛과 바람과 땅은 물론이고
토끼 같은 가족과 양떼 같은 친구들
그렇다고 원수를 사랑하자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원수는
원수답게 대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생에 못다 배우고 갈지 모르겠다
화내지 않고 화내는 법
내가 번 것보다 적게 쓰는 법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도움을 주고받는 법(출처: 녹색평론 181호) 

*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는 미국의 작곡가 에런 코플란드가 1942년 작곡한 관현악곡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연합군 병사들과 전쟁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보통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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