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강단 (15)

임태집 목사(로고스선교회)

나에게 범죄한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한다면 얼마나 용서하면 될까?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자신에게 범죄한 자에게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쳤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랍비들이 가르친 세 번보다 많은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하는지 물어보지만,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로 말씀하셔서 용서에서 숫자 개념은 의미가 없음을 강조하셨다. 그 이유를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 알려 주신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나온다. 달란트는 예수님 당시 유대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으로서, 1달란트는 노동자 한 사람의 일일 품삯인 1데나리온의 약 6,000배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증언에 따르면, 유대 전역에서 각출 된 1년 세금이 800달란트였다. 이 일만 달란트는 10년 치 세금 이상의 금액으로 그가 가진 것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이었다. 결국 이 빚은 인간이 자신의 공로로는 절대로 죄를 용서받을 수 없음을 말해 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죄를 범한 크기는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죄악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함 받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현실에서 나에게 빚진 자를 맞닥뜨리면 용서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자료 출처 - 넷플릭스
자료 출처 - 넷플릭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끈 ‘마이 네임’ 드라마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이야기이다. 딸인 지우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잡아 달라고 경찰에 찾아가지만, 경찰은 CCTV 사진으로 진범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이에 지우는 공권력과 법으로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응징하지 못함을 깨닫고 스스로 범인을 찾기로 하고 아버지가 잠입하여 몸담았던 마약밀매 조직에 들어가 살인 병기로 몸을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조직 두목을 죽임으로 복수를 한다. 복수 과정에서 조직원이 이제 그만하라고 말해도, 경찰 동료가 범인을 죽인다고 모두 해결되는 게 아니라 결국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것이라고 말해도, 지우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홀로 싸운다. 아버지의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았기에 최소한 죽이거나 그 이상으로 응징해야 그녀에게 보복이 될 수 있었다.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의 저자 레이첼 킹은 법을 통한 범죄자들의 처벌과 보복을 중시하는 응보적 정의(正義)와 용서를 통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치유를 중시하는 회복적 정의(正義) 를 소개하면서 살인 사건의 유가족 중에 회복적 정의를 선택한 이들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많은 유가족이 드라마 '마이 네임' 스토리처럼 가해자를 죽여서 보복하고 싶어 하지만, 법적으로 개인의 응징이 또 다른 범죄이기에 법 테두리에서 최대한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고자‘사형’이라는 판결을 받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들이 도달한 결론은“가해자의 사형이 자신들을 치유해 주지 못하며 오히려 그 치유를 더디게 한다”라는 것이다.

2019년 11월,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선상 시티뱅크 영업장 내 ATM에서 현금을 찾던 뉴욕 대학 교수의 머리를 폭행해 현금 300달러를 빼앗아 달아난 범인을 체포한 사건이 일어났다. 머리를 가격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던 피해자는 맨해튼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나흘 만에 사망했다. 맨해튼 검찰은 가해자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점과 석방 후 재범 가능성이 매우 낮은 점 등을 고려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했다.

일반적으로 경범죄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 살인 사건 케이스에서 운영된 건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피해자의 아들과 며느리는 맨해튼 검찰이 운영하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동의하고, 참여하는 동안 가해자는 유족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가해자에게 선고가 내려진 날 법정에서 피해자 아들은 “내가 얼마나 아플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내가 얼마나 당신을 미워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더 미워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라며,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라고 말했다.

‘용서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헬라어 동사 ‘아페소’는 ‘용서하는 사람과 관련된 죄악을 죄를 범한 형제로부터 먼 곳으로 보낸다’라는 의미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관련 죄악과 결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자 아들은 가해자가 이 사건 이전에 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며,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분노가 점차 슬픔으로 바뀌게 됐다고 고백했다. 또한 “당신이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내게 직접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진심으로 기뻤고, 당신의 진심을 믿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로 최고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었던 가해자의 죄가 징역 10년형과 보호관찰 5년으로 감형되었다.

용서를 통한 회복적 정의에 대해 오영희 심리학 교수는 “용서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인정하고 표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를 충분히 원망하고 미워해 본 후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가해자가 준 상처로 고통스러워하지 않기 위해 응징의 정의보다 용서를 통한 회복의 정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용서는 피해자를 치유하고 범죄자를 회개하도록 하며 그가 다시 한 번 인간답게 살 기회를 주는 빛나는 행위이기에 생산적인 가치가 있다. 이는 사형과 복수와 같은 응보적 정의로는 이룰 수 없는 높은 가치다.”라고 밝혔다. 미국 문필가 마크 트웨인은 “용서는 자기를 짓밟는 사람에게 향수를 뿌려 주는 풀꽃 향기와 같다.”라고 했다. 이처럼 용서는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 용서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안다면 복수의 어두움과 파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가운데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간구하셨다. 용서는 소망과 생명이 피어날 가능성을 준다. 그렇다고 가해자의 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는 말씀과 같이 악인을 심판하는 주권은 하나님께 속하여 최고의 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정의를 이루신다.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을 죽인 가해자를 양아들로 삼으면서 딸에게 “그를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냐?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어찌하여 어찌하여…”라고 땅을 치며 하나님께 기도하셨지만, 정신을 차린 후부터는 도리어 원수를 양아들 삼으려 하고 더 이상 고뇌하는 모습은 없으셨다고 한다. 로마서 12장 20-21절의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말씀을 손 목사님은 그의 삶에 옮기셨다. 용서는 회복적 정의를 세우고 사랑의 가치를 얻게 되는 위대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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