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강단 (16)

임태집 목사(로고스선교회)

성경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요나의 이야기다. 요나서 3장에서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심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의 죄악에 대해 말하기를 살인, 궤휼,  강포, 우상 숭배, 착취와 음란이 가득하다고 했다(나훔 3장).

하나님이 요나에게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신 의도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고 니느웨를 돌이켜 회개케 하여 구원코자 하심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메신저 역할을 부여받은 요나는 하나님의 의도와 다르게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치려 하였고 욥바로 내려가서 배를 탔다. 니느웨는 팔레스타인에서 동쪽으로 800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다시스는 서쪽으로 320km 떨어진 스페인 해안에 있어서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자 한 것이다.

요나 4:2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은 니느웨는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원수였기 떄문이다. 요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길 원했다. 그들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하여 재앙을 면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니느웨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의 맨 밑층으로 내려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숨어 잠을 잤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태풍을 일으키시어 선장을 통해 깨우시며 책망하셨다.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요나 1:6).

요나는 태풍의 원인이 자기가 하나님의 낯을 피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바다를 잔잔케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고 해결책도 제시했다. 요나는 원수 니느웨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러 가기보다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터 라스트맨의 요나와 고래(출처 - 위키피디아)
피터 라스트맨의 요나와 고래(출처 - 위키피디아)

사공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질 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삼일삼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게 하신 후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결단했을 때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다. 그리고 다시 요나에게 하나님의 명령대로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자 요나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서 외쳤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 3:4). 마지 못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한 것처럼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절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메시지에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를 입고 회개하였다. 그 소문이 왕에게 들리자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 위에 앉았다.

이에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요나 3:10)라고 반응하셨다.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을 때 요나는 마땅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했지만, 심히 싫어하고 노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반발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요나 4:2, 3).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화를 내고 니느웨 성에서 나가 성 동편에 초막을 짓고 그늘 아래 손으로 턱을 괴어 쪼그리고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 보았다. 순식간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 니느웨 성이 무너져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40일 동안이나 앉아 있었다. 그동안 날이 더워서 햇볕을 가려 주는 박넝쿨로 인해 심히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박넝쿨을 벌레가 갉아먹어 뜨거운 해를 보게 되자 또 하나님께 화를 내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요나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10-11)라고 말씀하시며,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 죄인 된 백성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요나가 알기를 원하셨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두 번째 이야기는 돌아온 탕자에 관한 이야기다. 누가복음 15장에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상속 재물을 받아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마침 크게 흉년이 들어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연명하다가 이마저 여의치 않자 아버지께 돌아간다.

유대 관습에 아버지의 임종 때가 아닌 생존 시 상속 요구는 관례에 어긋나며, 그런데도 재산을 물려받았을 경우 자신이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받은 돈을 마음대로 다 써버리고 배가 고파지자 아버지께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환영해 주었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첫째 아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가 잔치하는 소리가 들리자 자초지종을 종에게 듣고 화가 났다. 첫째 아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지만, 아버지가 들어오라 한다. 이에 아버지에게 성실히 섬긴 자신에게는 염소 새끼도 없었는데 탕자 같은 둘쨰에게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니 무슨 일이냐고 따진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 둘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얻었기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31절).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을 보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며 기뻐한다. 아들을 안고 입을 맞춤은 사무엘하 14:33에 의하면 아들에 대한 조건 없는 용서를 뜻한다. 돌아온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끝없는 용서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가락지를 끼워 준 것은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인장 반지를 준 것으로 자신의 권한을 아들에게 주는 행위와 같다. 아버지의 이러한 마음은 첫째를 향해서도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15:31에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첫째에게 이미 모든 것을 주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첫째가 안다면 아버지 말대로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32절) 할 것이다. 나를 향한, 저 사람을 향한, 저 나라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기꺼이 아버지의 마음에 화답하고 순종하여 함께 기뻐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예레미야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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