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34-40

허영진 목사

예수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길로 가는 사람이 많다”(마 7:14)고 말씀하셨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이런 형편을 'Heimatlosigkeit,' 즉 '고향 상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에게는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는데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독의 시인 헤르만 헤세의 ‘그 어디엔가’라는 시 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의 사막을 지나
전신을 불태우며 나는 헤맨다.
그러나 거의 잊어버린 그 어디엔가
서늘한 나무 그늘 아래
꽃이 피는 동산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어디엔가 꿈결처럼 먼 곳에
나는 알고 있다. 하나의 안식처가 기다리고 있음을
영혼이 고향의 품에 안겨 포근히 잠들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생은 본래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여 길을 떠난 나그네였습니다. 그러나 불볕에 전신을 태우며 사막을 헤매다가 그만 돈, 명예, 권력, 쾌락과 같은 신기루에 홀려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덴마크가 낳은 우수의 철인 키에르케고르는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할 때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말했습니다. 우상은 언젠가 반드시 깨어집니다. 이때 우상숭배자도 파멸하고 맙니다. 그래서 시인 헤르만 헤세는 참다운 삶이란 곧 세상 것에서 떠나고 죽는 “죽음의 연습”이요 “떠나는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했던 바울의 고백도 바로 세상 것 즉 상대적인 것에 대한 “죽음의 연습”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절대화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상대적입니다. 언젠가 소멸될 것들입니다. 상대적인 것에 매달려 사는 인간도 상대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 역시 소멸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인간은 본래 죽음이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소멸되지 않는 세계, 절대적이고 영원한 나라의 시민이 될 자격을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죽음이 인간 존재 속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성경은 죽음의 통로를 열어 준 것이 죄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죽음에 따르는 고통 때문만은 아닙니다. 멸망할 세상에 속한 인간에게 죽음은 멸망이요, 이 멸망을 면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죽음을 모르던 인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요? 성경은 그 길이 분명히 있다고 선언합니다. 상대적인 세상에 대해 죽고 절대적인 세계에 대해 다시 사는 획기적인 전환, 이것이 멸망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 곧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이렇게 풀어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절대적으로 관계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랑이 멸망을 극복한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4).

절대적인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상대적인 세상으로부터 자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자유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울의 말과 같이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고전 7:29).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갈파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우슈비츠의 독가스실을 발명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주기도문이나 「쉐마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 만세를 외치며 똑바로 서서 독가스실로 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죽음에서 자유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위한 자유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것에서 완전히 자유한 사람만이 이웃을 향해 사심 없는 사랑의 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상대적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전환시키는 것, 자아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을 이웃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요 우리가 최후까지 붙잡아야 할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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