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수(큰나무교회 원로목사, 아름다운동행 초대 이사장)


십계명, 그리고 우상

구약에 통달한 유대인 학자 핼버탈과 마거릿(Halbertal & Margalit)은 저서 『우상숭배-Idolatry』에서 “성경의 핵심원리는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십계명 제일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이고,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로 시작된다. 천주교는 우상이란 말을 생략한 채 이 둘을 하나의 계명으로 축약하여 일 계명에 두었고, 유대교 또한 이 두 의미를 하나의 계명에 담아 제2계명으로 삼고 있다. 물론 십계명의 배경이 되는 성경본문은 모두 같다.

하나님을 위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최우선에 두는 게 우리 기독인이 지켜야 할 필수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십계명은 그 바탕이다.

우상이 무엇인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로새서 3장 5절)

우상이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우상의 개념은 새겨 만든 ‘어떤 형상’을 넘어선다.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에스겔 14장 3절)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욕, 정욕, 탐심 또한 우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오늘 우리의 교회를 위협하는 우상으로 ‘성장은 성공이다’, ‘권력이 힘이다’ 이 두 가지를 짚고 싶다.

내가 현역에 있을 때 몇 번 난처한 요청을 받았다.

“우리 교회들이 뭉쳐서 조직을 만들고 힘을 보여야 관리들이나 정치인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매우 현실적인 생각이다. 그 후 그분들이 주도하는 관청기도회가 열리고, 국회의사당에 초대를 받는 것도 보았으니 일견 성공했고, 그 뜻은 이룬 셈이다. 그런데 그게 지혜로운 것인가? 거기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을까? 그들, 그 교회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그 속셈을 짐작했을 관리들에게조차 부끄럽다.

빌라델비아 교회와 서머나 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시대를 섬기며 그 걸음으로 하나님의 품에 이르는 공동체일 뿐이다. 교회를 지나치게 위하며 성장에 몰입하는 행태는 교회의 우상화를 지근거리에 두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소개된 초대교회의 부흥은 구원-복음의 확장을 보여 주는 것이지, 숫자,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쪽의 메시지는 아니다. 성장-성공만 능사요, 은혜인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2장 10절), 곧 원수들에게 죽임을 당한 후에 면류관을 받게 하셨고, 빌라델비아교회는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3장 9절), 살아 있는 그들 앞에 원수들이 무릎을 꿇게 하셨다.

우리네 시각으로 보면 서머나 교회는 망한 교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지조를 지킨 두 교회를 한결같이 칭찬하셨고, 기쁨으로 받으셨다.

우리 안에 스며 있는 무속

근래 들어 문화라는 옷을 입은 무속이 종교를 빙자하여 넘실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맥도 없이 그 바람에 기울어 끌려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아니 섬뜩하다.

요즘 무속인과 역술인의 유튜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조회 수 10만, 20만 회의 코너를 쉽게 만날 수 있고, 평균치가 100만, 200만 회를 기록하는 무속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 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점을 친 사람이 41%라니, 참으로 놀랍다. 그러니 무속인의 성황은 당연하다 싶다.

무엇이 먼저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시류 가운데 나는 그리스도인다운 선택을 하며 행동하고 있는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지표를 분명히 해야 하고, 행동 또한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무엇이 먼저인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바른 선택은 소중하다. 가꾸고 세우는 것은 큰 수고와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망하는 것은 순간이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망령되이 행한 사울 왕이 그랬고(사무엘상 13장), 이방여인들과 그 이방의 신들을 끌어들인 솔로몬 왕이 그렇게 망했다(열왕기상 11장).

‘오늘 택하라!’ 광야 40년을 마치고, 그의 백성과의 별리를 앞둔 모세의 외침을 마음에 새겨두자.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새번역 신명기 30장 19절)

* 기사 출처 : 아름다운동행(http://www.iwithjes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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