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의 간증 (7)

로고스하우스, 기도의 집
로고스하우스, 기도의 집

Henry Shin(자비량 단기 의료선교사, CMM기독의료상조회 이사)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해인 2019년 여름에 캘리포니아 실비치 은퇴촌을 방문했다. 시카고에서 몇 년 전에 그곳으로 이주한 아주 가까운 집안 형님분을 방문했다. 휠체어에 앉아 계신 그분은 전혀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큰 눈으로 아무런 표정 없이 빤히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평소 같으면 웃으시며 “흥식이 아니야~ 어서 오라우”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을 텐데... 순간, 다시는 서로 인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억제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막연한 그리움과 죄송함에 의해 가슴이 저렸다. 더 일찍이 찾아오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후회스러웠다.

올해 2월 중순쯤 형수님이 전화하셨다. 1월 29일, 94세로 중증 치매 환자였지만 속 썩이지 않았고 아주 편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단다. 자녀들과 함께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이제 한숨 돌린 후에 알린다고 하셨다. 지난 2년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동안 원근 각처에서 많은 지인과 교회 내의 고령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떠나셨다. 오늘도 부고를 받았는데 3월 29일에 모친이 한국에서 향년 102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단다.

40대 후반 당시, 교회 인선위원장이셨던 젊은 담임 목사님께서 어느 장례식에 가던지 신 장로를 볼 수 있었다며 교회 교우상조위원장직을 맡기셨다. 코로나19 기간에도 교우들과 지인들의 장례식에 거의 모두 참석했다. 이 땅 위에서 마지막 얼굴 모습을 보면서 무언의 대화를, 유족들과는 하늘의 인사를 나누고 싶어 장례식에 참석하곤 한다. 그리고 현재 살아 있지만 죽음에서 멀지 않은 나를 인식하고 돌아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묵상하며 순간순간 살아 있음에 의미를 새겨보곤 한다.

관 속에 곱게 단장하고 누워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평온하시다. 그러나 거기까지 여러 다른 길을 통해서 오신다. 병원을 거쳐 직접 오신 분도 계시나 어떤 분들은 양로원을 거쳐 오신다. 어떤 분들은 집에서 아내와 가족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오신 분도 간혹 있다. 때로는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치매로 인해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가 모두를 힘들게 하고 안타깝게 하시다가 오시기도 한다. 이분들을 보며 때론 서로 알아보며 웃고 추억을 나눌 수 있을 때 만나보면 하는 그런 분들이 문득 떠올라 그리움에 젖곤 한다.

로고스하우스 제1쉼터
로고스하우스 제1쉼터

아내가 3월 초 10일간 가까운 일행들과 캘리포니아로 여행하자는 제안을 했다. 계획했던 대로 라모나 로고스하우스를 거쳐 LA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첫 5일간은 라모나 로고스하우스에서 보냈다. 높은 산등에 있는 넓은 쉼터에서 동서 남북을, 낮에는 푸른 하늘과 큰 바위가 군데군데 박힌 초록의 산들을 한눈에 보며 밤에는 수많은 별들과 검은 산줄기를 볼 수 있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꼈다. 돌산을 오르내리고 돌면서 흰 공을 날리기도 하고, 조용히 흐르는 찬양과 고전 음악을 들으며 지나간 명화들을 감상하고, 편안한 쉼과 내일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후반 4일은 LA 막내 아들의 집에서 머물렀지만, 아들과의 계획은 하지 않았고 낮 동안 그들의 일상에 방해가 안 되도록 했다. LA 방문의 첫 목적은 세 분의 노인 할머니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서로 만나 반가워하며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정을 나누며 그리움을 풀기 위해서였다. LA에서 비싼 렌터카에 1갤런 당 $6 하는 기름을 넣고, 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LA 고속도를 달리는 나와 아내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기에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였다.

3년 전에 뵈었던 88세, 89세 되신 두 노친들은 놀랍게도 안경, 보청기 없이 보고 듣고 하신다. 자신의 이로 식사도 잘하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넓고 따뜻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56년 만에 만나는 78세의 할머니는 대학 시절 기독학생회 회원 간호 학생이었다. 1964년, 전라남도 홍도 무의촌 진료를 동행했다. 지금은 서로가 좋은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옛친구이기에 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전문직 생활을 하다가  이학박사 장로의 아내가 되었고,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가 되어 섬기다가 은퇴했다.  지금은 매 수요일에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섬기고 있단다. 매일 새벽 기도 예배에 참석하고, 매일 1시간씩 탁구를 친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지만, 노인이란 생각이 안 들고 마음은 젊었을 때와 같단다. 부럽다.

일, 이년 전부터 기억력이 감소하면서 노화로 인한 가벼운 치매 현상이겠지 했는데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에 급속히 기억력이 하락하는 것을 느껴 염려가 되었다. 내가 섬기는 성가대의 지휘자가 컨템퍼러리 찬양곡을 선호해서 곡들의 음정과 리듬을 맞춰 따라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악보와 가사를 암기하는 것은 꿈나라 이야기다. 지난 60년 이상의 성가대원으로서 성가대 생활을 그만두는 것은 내겐 너무나 큰 슬픔이다.

기억력 감소로 인해 올해 1월 21일 신경내과 의사를 찾아갔다. 젊고 학구적인 여의사였다. 검진한 후, 인지기능의 장애가 있음을 진단한 의사는 원인을 찾기 위해 먼저 혈액검사와 MRA(뇌혈관의 상태를 보는 뇌 자기공명 영상)를 주문했다. 검사 결과는 뇌 혈관성으로 인한 치매에 특별히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사고력과 기억력 문제로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이 병의 원인인 뇌의 베타아미로이드 단백질의 침착 상태를 보는 Amyvid PET Scan이 있는데 검사 비용이 $9.000이라고 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 연구를 위한 임상시험(Clinical Trial)이 현재 진행되고 있어서 내가 참여하면 무료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참여 신청을하고 두 차례의 방문을 마쳤다. 2월 8일에 첫 방문을 하고 4시간이 소요되는 검진 과정을 거쳤고, 1주일 후에 스웨디쉬 커버넌트 병원에서 PET Scan을 했다. 먼저 방사선 영상 물질인 Amyvid를 정맥에 주입 후 30분 후에 Scanning을 시작했다. 

Amyvid는 베타아미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축적된 플라크가 뇌 신경섬유와 엉켜 있는 밀도의 여부와 정도를 알게 하는 뇌의 양성자 방출 단층촬영(PET) 영상화를 위한 방사성 진단제이다. PET Scan의 결과가 양성으로 알츠하이머의 가능성이 크게 나오면 기억력과 지적 능력이 점진적으로 감퇴한다. 그러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  같다. 옆에 있는 아내에게‘뉘시오?’한다던가, 방금 먹고도‘밥 안 줘?’한다면, 밖에 나간 후 집을 찾아올 수 없다면, 친구가 왔는데 멀뚱 보고만 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검사 결과를 듣는 3차 만남을 여행에서 돌아온 후 3월 14일 월요일에 하기로 했다. 오후 1시에 임상시험 책임 의사를 만났다. 우크라이나계인 여의사는 나에게 Amyvid PET Scan이 음성이라는 결과를 알려 주었다.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렸지만, 안도감이 들며 감사했다. 임상시험 대상에서 실격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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