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고 일정 기간 따라 다닌 사람들 중에서 제자들을 선택한 일에 대해 복음서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 3:13-14).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3).  
 
누가복음을 보면 따라 다닌 제자들 중에서 12명을 택하셨다고 하신다. 따라 다닌 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12명을 택하신 것이다. 당시 택함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막연한 기대로 설레었을까? 우쭐해서 교만했을까? 이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고 확신했을까? 아니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했을까? 여러 상념이 교차한다. 어떤 경우든 당시 12명의 부름 받은 제자들은 기뻤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를 통해 부름 받은 제자들의 결말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가 부름을 받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생각해 본다. 예수님이 직접 선택하신 제자들은 메시아라서 따르긴 했겠지만(세례 요한이 준 정보에 의해), 그래도 메시아라는 확신보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따랐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려는 것은 임명 받은 분들의 반응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이 교회의 부름(직분)을 죽도록 충성할 영광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부담으로 생각하고 따를까 말까를 본인이 결정할까?  본인의 결정에 의한 봉사도 억지로 진 십자가와 같은 경우가 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12명을 결정하시고 부르셨을 때, 부름 받지 못한 제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감사한 마음이었을까? 왜 나를 뽑지 않았느냐고 원망했을까? 

각자의 반응은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11명의 제자와 가룟 유다를 보면서, 부름 받았다고 다 축복이 아니고 그 결과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목사요 선교사이다. 이것이 나의 축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고 나의 반응 여하에 따라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는 상 혹은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뽑혔다 혹은 뽑히지 않았다는 생각보다 나의 현재의 반응이 어떤가에 더욱 집중하고 남은 생애를 살아야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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