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목사


유다는 유다 지방 가룟 마을 출신입니다. 제자 중 유일한 비 갈릴리인입니다. 이름은 민족 영웅 유다 마카비에게서 따왔을 것입니다. 그는 열렬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유다는 이기적이고 과격한 야심가였습니다. 

유다의 배신

유다 말고도 배신자는 허다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동생을 배신했습니다. 아나니야 삽비라 부부도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역사에는 배신의 행렬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오른손으로 식사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오른 쪽에 앉았으므로 주님 품에 기댄 듯한 모습이 되었으나 귀한 손님은 주인 왼쪽에 앉는 법입니다. 유다의 자리가 주님의 왼쪽이었습니다.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떡에 쓴 나물을 싸서 스프에 찍어 먹었습니다. 이것을 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솝을 유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유다가 물었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네가 말하였도다”(마 26:25).

유다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달빛 아래 등불과 몽둥이로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예수님께 다가간 유다는 절하고 입 맞추며 인사했습니다. 

유다가 단숨에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아닙니다. 한동안 주님을 따르려고 애썼지만 끝내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단숨에 거부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작은 불만이 쌓이다가 결국 배신에 이르는 것입니다.

유다의 배반에는 세 단계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유다는 부르심을 거절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자기 갈 곳으로 갔습니다. 그의 운명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도덕적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유다의 본심

유다는 왜 주님을 배신했습니까? 공포심 때문입니까? 어떤 이는 군중이 무서워 배신합니다.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시인할 용기가 없어서 거절합니다. 

돈 때문입니까?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에 부었을 때, 유다가 나무랐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12:5).

요한은 이렇게 밝힙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6). 유다는 회계 직책을 이용해 공금을 횡령했습니다. 그의 탐심이 예수님을 배신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기심 때문입니까? 열심당원 유다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로마 세력을 축출키로 맹세했습니다. 자유를 위해 목숨도 버릴 용의가 있었습니다. 

그는 꿈이 십자가로 무참히 깨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실망시킨 사람을 배신하여 깨진 꿈의 복수를 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 목적을 위해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 했으므로 결국 배신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는 핑계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죄를 책임져야 합니다.

유다의 비극

유다는 제사장들에게 가서 무죄한 피를 팔았다며 은 삼십을 돌려 주었으나 받지 않자 돈을 성소에 던지고 나와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기회 상실의 비극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의 비유가 성경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의 비극입니다. 건강, 재물, 인격 같은 것은 잃었다가 되찾을 수 있지만, 잃은 영혼은 다시 찾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의 비극입니다. 유다의 배신이 십자가를 낳았습니다. 

지금도 배신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거부하면 그의 손발에 못이 박히고, 이마에 가시가 찔리고 옆구리에 창이 꽂힙니다. 

어느 교수가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 잘 다녔지만 16세까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공개적으로 고백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어느 부흥집회 후 그의 이모가 말했습니다. “네 거절이 주님을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아느냐? 그건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단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죄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서 나무 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용서를 빕니다. 내 거절이 주님께 그렇게 못된 짓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죄의 무서운 결과를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죄가 그리스도를 못 박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의 은혜를 빌기 위해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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