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강단 (20)

임태집 목사(로고스선교회)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수기 12:1-3).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것 때문에 미리암과 아론으로부터 비방을 받았다. 그들이 전혀 자격없이 모세를 비방한 것이 아니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였고, 아론은 대제사장이었다. 심지어 미리암은 모세를 돌본 누나였고, 아론은 언변이 뛰어난 모세의 형이었다. 그들이 모세를 비방한 까닭이 오로지 구스 여자 문제 때문 만은 아니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그들의 영적 권위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70명의 장로들과 두 명의 리더들이 예언했던 사건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영적 리더인 여선지자 미리암과 대제사장 아론만이 아닌 70명의 장로들에게 모세에게 영적 권위인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또 장막으로 가지 아니한 다른 두 명의 리더들에게도 임하였다. 그리고 그 두 명이 예언하는 것을 그치지 않자,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그들을 말려 달라고 말한다. 모세는 여호수아의 말에 질투하느냐고 책망하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사 다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하였다(민 11:25-30). 

이 사건을 들은 미리암과 아론은 무리 중의 하나가 아니라 자신들이 모세와 같이 특별히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는 영적 권위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방에 대해 모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히려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모세를 인정해 주셨다.

죽음을 앞둔 모세
죽음을 앞둔 모세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확신과 주장이 강한, 카리스마적인 사람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리더로서 인정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리더의 자질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리더의 자질로서는 수긍하지만, 성품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보다 카리스마가 있고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을 리더의 자질로 본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리더로서 하나님이 찾으시고 인정하시는 자질은 정반대이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갈 지도자로 카리스마가 뛰어난 자가 아닌 말이 어눌하지만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더한 사람을  세우셨다.

온유함에는 의미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담겨 있다. 그저 얌전히 화를 내지 않는 온순한 상태가 아니라 타인을 섬기며 타인의 아픔을 아는 마음이다. 동시에 주인 되신 하나님에 의해 길들여진 성품을 말한다. 온유함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면서 갖추게 된 성품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의 온유함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그것은 모세의 두 번째 삶의 주기였던 미디안 광야에서 찾을 수 있다.

1. 온유는 광야에서 길러진다

광야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극히 제한된 곳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필요가 가장 절실해지는 장소이다. 인간이 한계와 고통을 느끼기에 광야는 인간을 겸손케 하고 온유함을 가르쳐 준다.

모세의 첫 번째 삶의 주기에서 그는 애굽 공주의 양아들이었지만, 그의 어머니 요베겟이 유모로 키워 히브리인의 정체성을 갖게 하였다. 애굽 왕가의 양아들로서 활용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가졌던 그가 40세 때 동족 히브리 사람을 위하여 나섰다가 애굽인을 쳐 죽이는 살인자가 된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행 7:25) 그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사실 살인자에게서 온유한 성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그가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80세에 출애굽 지도자로 부름을 받지만, 다섯 번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한다. 모세의 온유함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광야의 시간 속에 하나님의 손에 의해 길러진 거룩한 산물이다.

2. 광야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게 만든다

나의 자원이 하나도 없는 광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손에 길들여진 온유함을 갖게 되었다. 온유한 모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아 친구와 이야기하듯 하나님과 대화하게 된다(출 33:11). 

그의 절정의 기도가 출애굽기 33장에 잘 나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과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은 주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간청하기를 주의 길을 보이시고 은총을 입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아니하시면 자신들도 보내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목이 곧은 백성을 진멸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상기시켜 드린다. 모세의 기도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3. 온유하신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죄로 인한 염려, 고통, 그리고 육체적 의무의 짐을 진 자들이다. 그 짐 위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유전의 무거운 짐을 더 지웠다. 그런데 예수님은“마음”이란 단어로 본질적 성품을 말하면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고 한다.

카슨(D.A. Carson)은 마태복음 12:20의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보아 “고통과 좌절로 심령이 산산이 부서져 쇠잔해 있는 연약한 영혼, 마지막 한 가닥 소망마저 다 없어져 가는 인생, 양심의 빛을 상실해 심령이 어두워져 가는 영혼”들이라고 했다. 마치 광야에 홀로 남겨져 희망도 없이 위협받고 지쳐 있는 상태이다.

예수님은 이들이 함께 주님의 멍에를 메어 주님으로부터 배우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진정한 온유자이시고 온유함에 대해 알게 해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멍에는 겸손하고 온유하기에 어거스틴(Augustine)의 말대로 새의 깃털처럼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만큼 가볍다.

4.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다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람의 노력으로 맺히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맺힐 수 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인 온유도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실 때 가지된 내가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요 15:4-5).

5. 온유는 축복을 나누어 화평의 공동체를 이끈다

팔복 중 세 번째 복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이다. 농경 시대에 땅은 삶의 축복을 상징한다. 그런 땅은 단순히 삶의 풍요만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풍성한 나눔을 의미한다. 시 37:11에서는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풍성한 화평”이란 혼자가 아닌 이웃과 함께 축복을 나눌 때 얻을 수 있는 공동체적 샬롬을 의미한다. 온유는 속해 있는 공동체를 화평으로 이끄는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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