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펴냄(2022)

 

작별인사는 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작가가 주로 다루는 기억, 정체성, 죽음이라는 주제가 이번 장편소설에서는 미래를 배경으로 새롭게 직조된다. 달라진 것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반드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문제로 더 깊이 경사되었다는 것이다. 핵심 주제였던 정체성의 문제는 개작을 거치며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 대신 태어남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변증법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라고 출판사는 소개한다.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로 소설은 시작된다. 첫 문장에 밝혀져 있지만, 화자이자 주인공인 철이는 인간 로봇 휴머노이드이다. 그 중에서도 생각하고 느끼고, 인간과 똑같이 살기에 인간과 전혀 구분되지 않는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이다.

아버지가 철이에게 출생에 대해 알려 주지 않고 등록을 하지 않아 자신이 인간인 줄만 알다가 어느날 갑자기 잡혀간 수용소에서 철이는 각종 인공지능 로봇들을 만나고, 유일한 인간이긴 하지만 장기 기증을 위해 탄생된 복제인간 순이를 만난 뒤에야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아울러 그들을 통해 우정도 배운다. 그러나 세상은 예기치 않은 속도와 방향으로 마구 변해간다.

철이는 질문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인가? 나는 인간인가 아닌가

비현실적인 내용이라고 이 소설을 단순히 SF 로 분류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스토리 전개 중에도 줄곧 생자필멸(生者必滅, 생명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와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를 인간과 로봇과 클론의 입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인류가 대부분 멸망한 뒤에까지 남게 된 주인공은 다른 로봇들의 만류에도 순이와의 재회와 죽음을 선택한다. 혹시 망가져도 연구소 서버에 연결되면, 다른 육체로 환생할 수 있지만, 멸망한 지구의 척박한 땅 한귀퉁이에서 철이는 휴머노이드와 동물들과 함께 살다가 늙어서 죽은 순이의 뒤를 따르기로 한다. 필멸 없이는 영생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운 건 죽음 때문 아닌가. 생자필멸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으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인간의 지능을 축적해 진화하던 인공지능 로봇들의 세상이 왔지만 철이는 인간으로서 마지막을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싶었던가 보다.

소설은 처음처럼 철이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들은 빠짐없이 아마 우주의 일부로 돌아갔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한다. 선이가 늘 하던 이 말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김영하 소설가는 장편소설로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는 여행의 이유오래 준비해온 대답, 보다, 말하다, 읽다등을 출간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본문 일부>

"인간의 뇌도 경험한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 하지만 책이 너무 많이 쌓인 곳에서는 특정한 책을 찾기 어렵듯이 모든 기억이 살아 있다면 필요한 기억을 제때 찾을 수 없잖아? 그래서 쓸데없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억들은 거의 잊힌 상태로 보관되고 있어. 기억력뿐 아니라 연산 능력, 감각 능력, 집중력 같은 것도 너무 발달하지 않도록 인간의 뇌가 제어해그러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거든. 사회생활도 어렵고...”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 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섯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기에게든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아직은 나도 있고 너도 있어. 나의 이야기도 있고 너의 이야기도 있어.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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