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는 자의 기도 14

안셀름 그륀 수사
안셀름 그륀 수사

박준형 칼럼니스트(캐나다)

독일 베네딕도회 수사인 안셀름 그륀은 현존하는 영성심리의 대가입니다. 그는 결정과 분별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수도원 안팎을 가리지 않고 강의하고 상담하고 피정을 진행해 왔습니다. 제가 이분을 알고 배우게 된 인연이 새롭습니다.

2015년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아 저희 부부는 절망했습니다. 이때 찾아간 곳이 왜관의 베네딕도 수도원이었고,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원내에 있는 분도출판사를 방문해 책 구경을 하던 중 우연히 이분의 책을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아래로부터의 영성』(2014)이었습니다. 투병 중의 아내와 저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매일 투병하는 동안 낮아지고 낮아지는 우리 심령 그 아래로부터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몇몇 기도문들은 그의 책 『결정이 두려운 나에게』(가톨릭출판사, 2016)의 부록에서 인용했습니다. 날마다 결정하고 분별해야 하는데, 막상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우리에게 그의 기도문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모범을 제공합니다. 

그의 기도를 따라 우리의 결정과 분별의 삶이 한층 더 구체적이고, 무엇보다 성령의 도우심에 의존하여 부요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주님께 있는 그대로 고백할 때 주님께서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현란한 말의 향연이 아니라, 비천해지고 낮아진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정직한 고백에 응답하십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 됩시다. 일상의 구체적인 사건과 상황 안에서 기도합시다. 기도는 결코 진공 상태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단상에서 드리는 거룩한 청원이나 중보만이 아닙니다. 아이처럼 단순하고 구체적인 기도를 통해서 매 순간 성령을 통해, 성령과 함께, 세상의 부와 풍요와 인정과 칭찬이 아니라 “진리의 길을 택하고 주의 법을 우리 앞에 둡시다”(시 130:30).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 어둠과 빛 사이에서 또 다시 선택할 기회가 찾아올 때 추호도 두려움 없이 빛을 선택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용기를 키웁시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천국에서) 예수님이 2,000년 전 마리아에게 하셨던 동일한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너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눅 10:42).     

* 삶이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때, “생명을 선택하게 하소서.”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저는 제 삶이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일을 방치하고 무미건조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버리고 생명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게 성령을 보내 주소서. 생명을 선택하려는 제가 주변 상황이나 다른 이들의 뜻에 따르지 않고 제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소서. 

이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다른 이들이 제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 바랄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삶을 책임지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제 삶이 축복받은 삶이 되고 매 순간 죽음과 틀에 박힌 수동적인 삶을 거부하고 제 자신이 다른 이들을 위한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새롭게 생명을 선택하게 하소서. 아멘.

* 불평하고픈 마음이 들 때, “기쁨을 선택하게 하소서.” 

우리의 기쁨이신 예수님, 당신께서는 무엇이 기쁨인지 저희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일들만 보입니다. 그래서 제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게 기쁨과 사랑을 주고, 저도 그들의 사랑과 호의에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는 슬픔 중에서도 기쁨을 선택하고 우는 가운데서도 웃음을 선택하는 길을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건강한 몸, 저를 도와주는 친구들, 자연의 아름다움 등, 제가 감사하고 기뻐할 이유들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기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게 슬픔을 주고 불평하게 만드는 것들을 찾으려고 합니다.

주님, 제게는 당신의 이런 말씀이 필요합니다. “생명과 기쁨을 선택하여라. 기쁨은 네 안에 있단다. 네 의식 전체가 기쁨으로 물들 때까지, 네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을, 말과 행동 그리고 이웃과의 생활 안에서 점점 늘려가는 일은 네게 달려 있단다.”

주님, 이미 제 안에 있는 기쁨을 저에게 일깨워 주시어 제가 매일같이 기쁨을 선택하게 하소서. 아멘.

* 갈등이 있을 때“제게 용기를 북돋워 주소서.”

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 저는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갈등을 억압하거나 무마하려 들거나 때로는 저절로 해결되길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오히려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대립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셨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홀로 맞서셨습니다. 당신께서는 하나님과의 교감에 의해 내린 결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여, 제게 그런 용기를 북돋워 주소서. 당신의 도우심을 의식하는 가운데 제 자신을 돕고 제 직관에 따라 결정할 용기를 내도록 제 힘이 되어 주소서.

당신께서 제 편이 되어 주신다면 저도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 용기를 주시고 제 편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당신께서는 내면의 중심을 잃어 버리시지 않고 다른 이들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우셨던 것처럼, 제 안의 중심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저도 당신께서 지니셨던 자유와 신뢰를 지닐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나이다. 제 형제이자 주님이 되어 주신 예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 양심의 결정을 위한 기도,“당신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을 찾게 하소서.”

공정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당신께서는 제 모든 생각과 고민뿐만 아니라 제 마음을 들여다보시고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제가 지켜야 하는 당신의 계명을 알고 있지만, 명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계명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당신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바가 중요하고, 제 결정의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과 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모든 숙고, 곧 제 의심과 고민을 당신께 바치오니, 마음 깊은 곳으로 저를 이끄시어 당신께서 이 순간 바라시는 바를 깨닫게 하소서.

제 결정이 외적인 규정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다른 이들이 저를 비난할지라도, 당신의 뜻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는 확신을 제게 심어 주소서.

물론 양심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 곧 제 안의 가장 내적인 존재와 일치하는 소리를 듣고 결정을 내리는 용기와 확신을 제게 심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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