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김기창 그림)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싸움이나 전쟁이 참 많습니다. 얼마나 전쟁이 많았으면 전쟁사만 알면 세계 역사는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했을까 싶습니다.

개인이나 국가 간에 그렇게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13척의 배로 일본 배 133척과 싸워서 이순신 장군이 승리한 명량 대첩은 울돌목이라는 지역으로 왜군을 유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이 싸움을 걸어올 때는 적을 우리의 페이스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페이스를 생각할 때, 객관적인 숫자(재력, 학력, 체력, 권력 등) 파악에만 집중하면 싸움에 실패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페이스는 세상적인 것이지만(지식, 힘, 재력, 권력, 인맥 등), 하나님 백성의 페이스는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창 3:15, 요 19:30).

이 세상에 싸움이나 전쟁이 많은 것은 배후에 사탄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의로운 욥이 까닭 없이 고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욥이 까닭 없이 고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욥 1:8과 2:3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심으로 인하여 사탄이 욥을 시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자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지, 시험은 싫으니 하나님께서 자랑할 것이 없는 삶을 살면서 축복만 받기를 원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시험을 걸어왔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너무 지치고 배고픈 상태에 있었기에, 사탄이 제일 먼저 먹는 것으로 시험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탄이 치고 들어온 배고픈 문제 해결로 접근하지 않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대답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으시고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여 싸우십니다. 사탄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세 번 에수님을 시험한 후에 물러갑니다. 

고후 11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 때문에 참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이 싸우는 싸움은 "선한 싸움"이라고 합니다(딤전 1:18, 6:12). 그리고 자신도 선한 싸움을 싸웠으니 이제 의로운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딤후 4:7-8). 바울 역시 사탄이 태클을 걸어올 때 자기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페이스로 사탄의 시비를 끌어들여 승리한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님처럼 핍박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페이스는 지식과 로마 시민권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우리의 힘으로 하려다가 넘어집니다. 사탄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고, 사탄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끌어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언제나 도망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사탄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창 3:15)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지방 사역을 많이 다녔습니다. 초기 10~15년 동안 울란바타르만 벗어나면 비포장 도로였습니다. 말이 도로이지 초원에 나 있는, 먼저 간 자동차에 풀이 죽어 있는 바퀴 자국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도로 표지판도 없고 오직 자동차 바퀴 자국만 따라갑니다. 사막화 된 곳은 풀이 없기 때문에 바퀴자국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눈이 오는 날은 풀이 여간 많지 않으면 바퀴자국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자동차가 고장 나는 경우입니다. 전화도 안 되고, 렉카차도 없고, 부품을 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루에 몇 대나 지나갈지 말지 한 곳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자동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가는 차의 도움을 받아서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경우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는 차의 도움을 받아서 다음 마을에 가서 울란바타르로 전화해서 기술자를 보내 달라고 하든지 부품을 보내 달라고 해서 차를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시골 사역을 나갈 때는 자동차 고장 없이 다녀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지만, 몽골이 거의 10년이 다 된 차들을 수입해서, 그런 차들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고장이 안 나는 것이 이상합니다. 늘 마음을 졸이면서 "하나님, 우리가 놀러 다니거나 관광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십니까?"라고 불평하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네가 편하게 다녀오면 네 자랑만 할 것 아니냐? 그리고 이런 정도의 고생도 없으면 간증할 것이 없지 않느냐? 내가 간증거리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불만이냐?"

그 후부터 난감한 상황이 생기면 "하나님, 이번에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주실 것인지요? 어떤 간증을 하게 하실 것입니까?"라고 기도하다 보니, 원망이나 근심이 없어지고,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야 하늘을 나는 새가 보이고 들에 핀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마 6:26,28). 

이제는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드넓은 몽골 땅을 다닙니다. "하나님 이제 간증거리 안 만들어  주셔도 좋으니 그냥 다녀오게 해 주세요. 아멘"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3-4).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 1:18).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