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


최근 교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화와 침체를 겪으면서 교회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회를 다루는 책 대부분은 교회에 대해 성경적 정의를 내린 다음, 교회의 구성원에 대해 다룬다.
 
과거 16세기를 지나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 국교회가 성경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된 비국교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들은 교회의 가장 큰 폐해로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신자라 자처하는 것을 지적했다. 교회는 신자들이 모인 곳이어야 하는데,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영국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교도의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경험도 없고,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고, 참다운 예배도 드리지 않고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교제도 하지 않는 이들이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교회의 중요한 의사들을 결정한다면 그 교회는 참다운 교회가 되겠는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겠는가?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교회 직분을 맡은 사례가 많고, 어떻게든 더 많은 교인을 붙잡아 두려고 교회의 문턱을 낮추다보니, 교회가 예수님을 높이는 순수함과 거룩함을 추구하기보다 성장과 외형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예배 장소나 시간, 프로그램을 강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먼저 참다운 신자가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코로나19의 끝자락에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많은 분들은 구원의 확신이 없었음을 지금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가 치러야 할 대가를 말씀하시면서 급진적인(radical) 요구를 하셨는데, 그동안 교회는 교인들에게 죽지 않고 심판도 받지 않는 쉽고 간편한 길만 보여 주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기독교 역사 속에는 전통 교회의 타락에 맞서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하려고 핍박과 어려움을 감내했던 수많은 신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대에 ‘분파’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십자가의 진리를 치열하게 살아냈으며 교회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냈다. 당시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상식을 넘어서고, 교회 및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급진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에 갖은 핍박을 견뎌야 했지만,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들의 노력이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으로 순전한 교회를 이루고자 했던 발자취였음을 확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 누가 교회의 구성원인가? 신약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님을 믿고 침례를 받은 자들이지 않은가! 침례를 받음으로써 한 지역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 구성원들 간에 언약적 관계를 맺으며, 예수님의 가시적인 몸인 교회에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서약힌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세상에서 신랑이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신부’radiant bride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다.

현대 교회의 문제점은 전문적인 시스템의 부재라면서 건물이나 돈 등 자원이 넉넉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순전한 교회를 꿈꿨던 신앙의 선배들은 그런 외적 자원 없이 성경과 사도의 가르침, 그리고 교부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을 연구하면서, 교회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죄와 싸우고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해 구별된 삶을 살았으며, 서로에 대한 헌신과 격려, 때로는 치리를 통해 각 시대마다 순전함을 지켜냈다.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예수님을 대변하는 대리자로, 예수님의 재림을 부끄럽지 않게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다했던 것이다. 

이제 그 사명은 우리에게 넘겨졌다. 무엇이 성경적인 교회인가? 우리는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고 있는가? 깊이 자문하면서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인 우리의 죄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이 모든 문제의 답이신 예수님의 대속을 더 깊이 묵상하며, 그 빛 속에서 우리의 처신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거듭난 신자들이 하는 고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는 ‘신자들의 교회’(The Believer’s Church)이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