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과 만난 사람”에게 잘했으면...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

커피 내리는 물 온도를 86도로 하느냐 90도로 하느냐를 놓고 언쟁을 벌이다가 커피 클래스를 탈퇴했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지만, 어느 순간 어느 현장에서는 그게 절대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나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데 당시엔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웠나 후회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새삼 다가옵니다. 

사소하다, 작다는 말은 크기가 아니라 의미와 중요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때문에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커피 내리는 물 온도의 1도 차이는 작은 문제일 수 있지만, 사람의 체온이 1도 올라갔느냐 내려갔느냐는 사소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나아가 지구 온도가 현재보다 1도 더 올라간다면 이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인류의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때의 1은 매우 큰 숫자입니다. 기상 이변과 기후 변화 현상을 직접 경험한 지금도 지구온난화가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겠지요? 1도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야 하고 전 지구적인 대책 마련과 노력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 인식 전환의 필요성은 예수님도 자주 말씀하신 주제입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중요하고 존경받는가를 묻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예로 드시면서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고,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마 18:4). 자기를 낮추는 자를 결코 작은 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겸손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자기를 알리고 권리는 당당히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시대에, 드러내지 않고 양보하고 끝까지 침묵하는 사람이 존중받고 기쁨을 누리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시니, 확실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가진 종들에게 주인이 이렇게 칭찬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다섯 달란트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 돈으로 이익을 남긴 일을 적은 일이라 한 것은 소위 영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세상일(직장일, 사적 관계의 일)을 그리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회와 책임이 주어지는 일터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결코 작게 여기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평일에 직장에서 가족과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이 세속적이니 대충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은 더 급진적입니다. 당시에 작은 자로 예시된 사람은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을 내 형제라 칭하셨고 그들은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질문은 어떤가요? 현재와 미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클까요? 여기와 거기 중에서는요? 최소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가 그리고 여기가 미래나 거기와 비교해 결코 작지 않다고요. 현재는 미래와 연결되어 있고 내가 실재하는 곳은 거기가 아니라 바로 여기입니다. 현실 감각 없이 꿈만 꾸는 사람, 여기에 집중하지 않고 남의 일, 다른 곳의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무책임하며 불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내일이 있을까요? 거기에 가면 여기보다 나아질까요? 

인간과 하나님 중에서 누가 더 중요하고 크냐고 묻는 건 어떻습니까? 질문 자체가 틀렸고 신성모독이라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기까지 하셨고, 예수님은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동일시하셨으니, 인간을 무가치하고 작기만 한 존재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종합하면, 지금(now), 여기(here)가 중요하고, 사람(human)도 소중하고 크다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내일 그곳에서 뵈올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만큼이나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과 만난 사람”에게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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