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요구하시면 자신만이 깔고 뭉기던 자리를 들고 일어서야"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베데스다 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그리스도'(1670)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베데스다 못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그리스도'(1670)

요한복음 5장에서 38년 동안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며 거동하지 못했던 환자가 기적을 체험했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 속에 베데스다 못가에서 물이 동할 때를 기다리길 수십 년, 그나마 거동이 불가하여  혹시 연못의 물이 동하더라도 본인 스스로 갈 수 없기에 남의 도움을 기다려야 했다. 말씀에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시 146:3) 했건만,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자들이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넣어 줄 사람을 찾고 기다려야 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sheep market)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요 5:2)는 ‘자비의 집’이라는 의미이며, 성전에서 제사할 양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사료된다.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다리며 기도와 간구를 할 때 그 부르짖음을 응답 받아야 했던 곳(왕상 8:28)이지만, 당시에는 성전을 지키던 고관들의 만행으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요 2:14)이 들끓어 강도의 굴혈로 변질된 곳이기도 했다.

온갖 모략과 중상이 성행하던 곳, 형식과 외식이 난무하고 선한 백성의 피를 빨던 곳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바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책망과 저주가 임했던 역사를 말라기 선지자는 잘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38년이나 질병으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살던 환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기다리기보다는 종교도 제사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병 낫기를 소원하여, 전설과 소문에 치중하고 실오라기 같은 희망 속에 연못의 물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질병은 전설이나 소문으로 고칠 수 없었음이 사실이다. 과연 그 못에서 몇 명이나 고침을 받았을까? 아니 고침 받은 사람이 있기라도 했을까? 

요즈음 우리 기독의료상조회에서는 환우들의 숫자가 많이 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중환자가 늘고 있으며, 과거에 미미했던 중보 기도 요청도 더욱 구체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의술이나 물질보다도 환우 자신이 얼마나 믿음으로 자신의 질환을 위해 기도하며 병 낫기를 위해 간구하고 있는가이다.

우리는 환우들을 위해 매 주일과 수요일에 공개적으로 기도회를 갖고 있다. 모든 질환이 물질이나 의술로만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기도로 병 고침을 받은 사례와 역사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치료의 광선”(말 4:2), 그리고 전능하신 우리 주님의 안수하심으로 모든 질병을 고쳐 주셨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38년 된 환자가 본 기적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간절한 소원과 노력이 있었다. 불구의 몸으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베데스다 못을 찾아 물이 동할 때를 기다렸다. 그 못의 물이 효력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유일한 것이기에 병 낫기를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것이다.

둘째, 용기가 있었다. 38년이나 일어서 보지 못해 포기한 인생이었지만, 주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셨을 때, 그는 용기를 내어 일어났다. 아무리 중환일지라도 절망이나 포기를 금하고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셋째, 자기 자리를 들고 간 것이다. 38년이나 깔고 뭉기던 자리였다. 그에게는 이것이 유일의 의지이며 소유의 전부였을지 모른다. 오랫동안 깔고 뭉겼으니 그 상태를 짐작할 만하다. 헐고 누더기가 되었을 것이 뻔하며, 온갖 때와 더러운 오물도 덕지덕지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인생 전부를 깔고 뭉기던 누더기였을 것이다. 그의 고집이 깔려 있었고 그의 아집이 얼룩져 있었을 것이다. 누가 선한 권면을 해도 꺾지 않던 자만, 자리다툼하며 오만과 강퍅함이 고질화된 성격, 그 모든 것이 배어 있는 깔개였을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 주님이 요구하시면 자신만이 깔고 뭉기던 자리를 들고 일어서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자신이 옳게 여겨지고 틀림없다고 느껴질지라도, 전능하신 우리 주님은 인생의 때와 오물, 아집이 점철된 자신의 자리를 들고 가라는 명령을 하실 것이다.
38년된 이 환자가 주님의 전능하신 기적을 본 것이 바로 이 몇 가지 사연으로 이루어짐이 아닐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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