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지음 / &(앤드) 펴냄(2021)

『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에는 한수산 작가의 가족, 스승, 친구, 문학, 집, 자연, 여행 등의 추억들이 담긴 산문 26편이 들어 있다.

작가의 말은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로 시작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말이라고 작가는 바로 덧붙인다. 늙어갈수록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켜온 것을 보호하기가 힘들어져서 슬플 때 ‘내 곁에서 가족을 이루며 함께 지낸 이들에 관한 글을 한두 편씩 모았다’고 말한다. 여기저기 발표한 작은 글들이나마 이삭줍기처럼 모았다고 한수산 작가는 설명한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누군가가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고치는 것이다’라는 말을 이 책에서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이 주제인 줄만 알고 구입한 이 책의 첫 문장은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안다’였다. 덕분에 소설가의 느릿하고 감성 풍부한 추억 여행에 잠시 동행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다 고치는 것이다.’는 저자의 스승이었던 황순원 소설가의 가르침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원고는 긋고 지우면서 다시 써서 그 비워두었던 칸마저도 새카맣게 뒤덮여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선생님의 물 흐르듯 정연한 문장의 뒤에는 글자가 안 보일 정도로 고치고 또 고친 갈고 닦음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더한 말 없는 가르침이 어디 있으랴.’

전환점이나 시작점에 선 이에게 위로가 되는 충고인 듯하다. 창작이든 일상의 어떤 일이든 재주만 믿으면 안 된다는 충고이겠지만, 반대로 재주 없고 아는 거 없는 이에겐 고치고 또 고치고, 반복 또 반복하면 무슨 일 한두 개쯤 해낼 수 있다는 격려가 된다

또 산문집에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몇 문장을 이삭줍기처럼 모아 본다.

‘세 개의 안경을 필수품으로 간직한 채 살아야 하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결핍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각성을 주는가를 깨닫습니다. 무엇인가가 부족할 때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아는, 있어야 할 자리에 그것이 없을 때 비로소 그 존재의 두께와 넓이를 아는 이 지혜의 가난함을 어찌해야 할 것인지.’ 

'차라리 세월도 비켜가는 세월을 살고 있는 게 늙음인가 싶었다. 함께 늙어가는 아내, 꽃, 그리고 마당이 함께한 봄이라니. 주여, 오늘 하루 또 제 늙음이 아름다웠습니다.'

'풀 깎기라는 단순노동 속에서 “예수님 같이 해요” 하며 그분의 현존을 느낀다는 말씀을 담담하게 들려 주시는 수녀님을 바라보며 ‘참 고귀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여! 할렐루야! 밤새 소리치는 그 누군가의 철야기도보다 그 말씀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언젠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저자의 질문을 챙겨둔다.

'우리 모두가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날을 살 수 있을 때는 언제일 것인가.'


한수산 작가는 1946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사월의 끝」이 당선되고 1973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해빙기의 아침>이 입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부초> <유민> <푸른 수첩> <말 탄 자는 지나가다> <욕망의 거리> <군함도> 등이 있다. 오늘의작가상, 현대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채만식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