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숙(일리노이)


‘옛 시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앨범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사진 한 장이 H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오래된 고등학교 동문회의 색바랜 사진 속에 그리운 얼굴이 있다.

고등학교 2년 선배인 현순 선배는 처음 만날 때부터 유독 친절하게 H를 이끌어 주던 학생회장 선배였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이 걱정인 졸업생들에게 그 시절 은행원은 인기 있는 직업 일순위였는데,  그중에 투자신탁 은행은 좀 더 대우가 좋았던 걸로 기억된다. 현순 선배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투자신탁에 이력서를 내보라며 적극 추천하고 나섰다.

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이력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현순 선배로부터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와서 H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나갔다.

조심스레 H의 낙방을 얘기하면서 현순 선배는 H의 낙방이 부당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한 게 무슨 흠이라고 그것이 낙방의 이유가 되냐며 현순 선배는 진심으로 속상해 했다.

한때 기자를 꿈꾸었고 속기까지 배우는 열정으로 꿈을 키웠던 H에게 그렇게 시작된 거절의 상처는 H 인생의  한 페이지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마른 나무 같았던 그 시절, 번번이 거절로 돌아온 이력서들은 H의 가슴에 깊은 불신의 상처가 되었다. 불신의 죄는 암같이 무섭게 자라서 H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건만 사회의 편견 앞에서 좌절감만 깊어진 시절이었다.

시인은 그 옛날의 사랑 얘기를 노래 부르고 있지만, H의 가슴은 서늘한 추억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취업난으로 고단한  요즘 젊은 친구들의 인생의 페이지에도 불신의 상처로 기록될까 봐 H는 마음이 안타깝다.

H의 거절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 건 또 다른 거절이었다. 예수님 안에서 H의 인생은 전반적으로 치료되었지만, 여전히 치유가 쉽지 않은 건 기각당한 기도들에 대한 것이었다.

응답받는 재미로(?) 더 많이 기도하고 싶을 정도로 H는 많은 응답을 받았지만, 가끔씩 기각당한 기도에 대한 의문과 억울함도 있었다.

어느날 나막신 장사와 우산 장사 아들을 둔 어머니의 기도를 예화로 말씀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어느 한쪽의 기도를 기각하실 수밖에 없었을 창조주의 고민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H는 고백했다.

“나의 기도가 접수된 것도 감사요.”
“나의 기도가 기각된 것도 감사요.”

요즘 H는 기각된 기도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는 여유가 생겼다. 관계에 있어서도 이젠 더 이상 그 누구의 거절이 상처가 되지 않는다.

근심과 걱정, 불안 가득한 주변에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이 충만해지도록 사람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싶다.

매일 매일이 비전이고 싶은 H는 예수 안에서 삶의 질적 변화를 요구 받으며, 거절의 상처로 아파하는 이웃에게 정답 같은 말 대신 그냥 말 없는 응원을 하고 싶다.

H의 노래도 어느새 ‘옛 시인의 노래’에서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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