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대한 미안한 마음 또는 깨닫게 된 죄의식을 소중히 다루면"

오리건 후드 산 트릴리움 레이크
오리건 후드 산 트릴리움 레이크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


친구 목사님 두 명과 함께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유난히 덥고 지루했던 여름과 작별식을 하고 싶었다. 산마루에서부터 시작될 나뭇잎들의 변화에 남보다 먼저 인사할 겸 찾아간 곳은 오리건에서 가장 높은 후드 산, 해발 3.500미터나 되는 고산이라 한여름에도 꼭대기에는 눈이 남아 있다. 산중턱에는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고여 만들어진 커다란 호수(트릴리움 레이크)가 있는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구워 먹는 삼겹살과 입가심이라며 끓여 먹은 얼큰한 라면 국물은 한류가 미국 산속 깊숙한 곳에서도 퍼져갈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식후에 낚시를 하기로 했다. 낚시를 좋아하지도, 해보지도 않았지만 좋아하는 분이 있어 따라하게 되었다. 완전 초보인 내게 친구 목사님은 낚시줄 연결하는 법, 미끼 다는 법, 줄을 던지고 물고기가 물었을 때 당기는 법 등을 직접 해주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런 걸 왜 할까’하는 평소의 생각을 접어두고 따라하게 된 낚시질. 그날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한 명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코칭해 준 목사님은 한 마리, 그런데 생초보였던 나는 자그마치 송어 세 마리를 잡았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놀라 파닥거리는 느낌이 줄과 대를 통해 손에 전달될 때의 짜릿함, 풀었다 당겼다를 반복하다가 코앞까지 끌려온 녀석을 잽싸게 끌어올리는 손맛은 몸 구석구석에서 도파민을 뿜어내게 했다. “와우 대단하네요”. “꾼이신데요” 라는 칭찬과 격려를 흠뻑 받고 보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 저녁 일정 때문에 일찍 떠나야 한다고 말했던 나는 한 마리만 더 잡고 가자며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결국 예정된 출발 시간을 30분이나 넘기고 말았다. 

경험은 생각과 행동에 자극을 준다. 하루를 정리하며 좋기만 했던 감정 저 아래에서 꿈틀거렸던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보았다. 그동안 낚시와 낚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내 생각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나와 잘 안 맞는것 같다는 정도를 넘어,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시간 때우기나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남자들의 오락쯤으로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 생각이 너무 가벼웠고, 부정확했으며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들에게 미안했다. 낚시줄을 꿰어 주고 미끼를 달아 준 친구 목사님의 친절을 생각하면 더더욱. 한편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낚시를 위해 새벽 2시에 집을 나간다는 강태공들에 대한 이해심과 존경심이 생겼다. 앞으로 낚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좋은 취미를 가지고 계시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라고 말할 것 같다. 소풍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이다. 

성경에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장면이 있다(누가복음 5장). 우리도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해야 한다”는 교훈적 메시지를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살펴야 하는 중요 단계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여 물고기를 가득 잡은 후,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다. 무엇이 죄송스러웠을까?,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 전까지 가졌던 예수의 어업 실력과 방법론에 대한 선입견, 지척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던 방관자적 태도, 안드레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가볍게 생각했던 자신의 경솔함 등이 아니었을까? 기대와 경험 이상으로 물고기를 많이 잡은 사건으로 베드로는 방법론에 대한 실수나 무지가 아니라 그것을 말해 준 사람에 대한 무례와 무지를 깨달았다. 그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나온 고백이 “나는 죄인입니다”였다.  

상대가 옳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학습과 변화가 가능하다. 그로 인해 생긴 죄책감이 용서를 만나면 변화는 매우 효율적이고 감동적이며 자연스럽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하신 말씀이 변화에 대한 명령이었을까? 그보다는 베드로가 깨달은 자아의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한 용서의 선언 또는 새로운 삶으로의 초대였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의 제자가 된 베드로의 헌신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깨달음에 이어진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누군가에 대한 미안한 마음 또는 깨닫게 된 죄의식을 소중히 다루면, 일생일대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유튜브 PMI TV 일일텐을 통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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