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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니엘 목사(크리스찬저널 편집부장)


하늘 나라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천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갈 곳이고 영원히 거할 처소인데도 지금의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이 소홀하다. 골로새서 3:1-2 말씀은 그러한 마음에 쐐기를 박는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이 생각하고 찾아야 할 것은 위의 것인데, 땅의 것을 죽어라 하고 쫓아 다닌다. 요한계시록 4, 5장 말씀을 통해 위의 것을 생각해 보자.

요한계시록은 성경 원어 헬라어 ‘아포칼륖시스’( Ἀποκάλυψις)의 단어처럼 하늘의 뚜껑을 열어서 계시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서 중재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계시를 천사들을 통해 사도 요한에게 들려 주고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이를 수신자인 우리가 받아본 것이다. 특별히 계시록 3장까지는 사도 요한이 계시의 음성을 들었으나 4, 5장은 성령에 감동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다. 그가 본 것은 하늘의 예배였다.

하늘의 예배는 궁극적으로 완전한 예배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모든 예배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것이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과 뜻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대표적 예배학자였던 로버트 웨버는 그의 책 『예배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의 예배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땅에서 드린 예배가 하늘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예배를 땅에서 드리는 예배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의 예배처럼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왜 천국에 가려 하는가?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기쁘지 않다면 천국은 우리에게 천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요한계시록 4, 5장을 통해 우리는 하늘에서 드려지는 완전한 예배에 초대되었다. 그 예배를 말씀으로 경험하고, 이 땅에서 그렇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하늘 예배의 다섯 가지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하늘의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한계시록 4, 5장에는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성부 하나님과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 하나님, 그리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묘사된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향해 네 생물과 장로들과 천천 만만의 천사들이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찬송하며 엎드려 경배하고 있다.

예배의 목적과 중심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같이 들리지만,정직하게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면 예배가 목적이기보다 수단이 되었고, 하나님 중심보다 사람 중심에 있었던 적이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계시록 4, 5장을 보면, 모든 초점이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표현된 성령님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초점이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그분의 위엄과 존귀와 거룩하심과 아름다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시기 때문이다.

계시록 4:2-6까지 말씀을 통해 묘사된 하나님을 상상해 보자.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위엄과 무한한 권능과 권세, 그리고 완전한 통치하심을 보좌를 둘러싼 보석과 무지개와 번개와 천둥소리와 유리 바다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 통치와 위엄과 능력을 지니신 존재로서의 장엄한 임재를 보여 주며, 하나님께는 감춘 것 없이 밝히 드러나 보임을 말해 준다. 6절까지 묘사된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과 5장에서 묘사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는 보는 자로 하여금 감격하고 그 위엄과 권능에 압도되어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엎드리어 모든 것을 다 드려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심을 말해 주고 있다.

둘째, 하늘의 예배는 밤낮 쉬지 않는 예배이다. 6절부터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피조물들이 등장한다.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는 이사야서의 스랍과 에스겔의 그룹들 가운데서 선지자가 본 네 생물의 형상(사 6:2; 겔 1:5-25; 10:1-22)과 유사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있어 앞뒤에 눈(겔 1:18; 10:12)이 가득할 정도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와 분별력이 뛰어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피조물의 대표성을 띤 네 생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를 드림으로 그들의 존재 이유를 말해 준다.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8절) 히브리식 최상급 표현으로“거룩하다”라고 세 번 외치며(사 6:3) 시공간을 초월해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런데 밤낮 쉬지 않는 예배가 가능한가? 다른 사람도 만나고 혼자 있는 시간도 갖고 다른 데 둘러보고 나름 즐길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린도후서 3:18의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직접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본다면 다른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앞서 묘사된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과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주를 향한 찬송과 경배는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것이다.

셋째, 하늘의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되 전 존재로 드리는 것이다. 10절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자기의 관을 드리며 경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장로들을 묘사하기를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다(4절)고 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성을 보여 준다. 쓰고 있는 금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성도에게 주어진 존귀와 승리를 상징한다. 하늘에서 금면류관은 성도들에게 존재 가치 전부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주신 하나님께 드림으로 전 존재로 경배하고 있다.

넷째, 하늘의 예배는 온 피조물이 함께 참여한다. 계시록 5:11-12에서 보좌 주위의 천천 만만의 천사들이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네 생물과 장로들이‘아멘’하며 함께 경배한다(계 5:14). 특별히 어떤 자가 대표로 나와 찬양하거나 기도하지 않는다. 하늘의 찬양대는 일부가 아닌 전부이고, 만만의 천사 중에 다른 천사보다 음악적으로 뛰어나서 앞서 찬양하거나 인도하지 않는다.

다섯째, 하늘의 예배는 새로운 찬양과 경배와 기도이다. 계 5:8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는 말씀처럼 하늘의 예배에 기도의 요소가 있다. 그들이 드린 찬양과 경배, 그리고 기도는 계 5:9의“새 노래”로 절정을 이룬다. 시편 96:1-2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라고 말씀하듯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노래가 늘 새로워야 한다.

혹자는 찬양이 반복되어 그 내용이 그 내용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 아침 해가 새롭게 올라왔지만, 사실 어제 떴던 해와 다른 해가 아니다. 늘 같은 해이지만, 늘 아침마다 새롭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늘 새로운 날과 새로운 주의 사랑과 임재를 허락하신다. 우리가 드리는 주를 향한 노래도 새로움을 주시는 하나님께 반응하여 늘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즐거움으로 새 노래를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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