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훈 장로(수필가, 한국)


그냥 먹먹했다. 

감동적인 한 권의 책을 읽은 양 이렇게 단순히 뜨거운 느낌으로 가득 차 오르기는 처음이다. 사실 나는 심사위원이 되기에 여러모로 자격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나를 불러 그 일을 맡긴 것은 순전히 경험을 높이 산 까닭인 듯하다. ‘갇힌 이웃’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한 가지 이유에다가 ‘민들레편지’라는 쪽지를 만들어 15년 동안이나 무기수를 비롯한 장기수 형제들에게 복음을 심고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애썼던 열정을 헤아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편지 사역을 지속하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올해로 두 번째로 마련한 ‘북한이탈주민 재소자 생활수기’ 공모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한 분은 저명한 기독교 문인으로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이신 송광택 목사님이신데 이미 많은 저술을 통하여 크리스천에게 지성적으로 성숙한 신앙생활을 꾀하는 사역에 오랜 기간 앞장서 오셨다. 사실 그분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영광이었다.

접수된 서른아홉 편의 원고는 거의 모두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원고지도 아닌 편지지에 예닐곱 장 빼곡하게 써 내려간 정성이 가득한 작품들이었고 그 정성이 느껴져서 단숨에 읽기 미안하여 진중하게 읽어 갔다. 점점 깊어지는 물속에 들어가듯 다섯 시간 넘게 몰입하여 정독했다. 소설이 아니기에 글을 쓴 이의 정황(情況)이 눈에 환히 그려졌다. 한 마디로 저들이 찾은 ‘자유 대한’은 목숨의 대가였다. 입때껏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떤 수기(手記)에서 보았던 절박했던 한 장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차디찬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하는데 수심이 예상보다 깊었고 물살이 세어 아들을 챙기느라 돌발적인 상황에 떠내려가는 아내를 잡을 수 없었다. 소리치면 경비병에게 들킬 게 뻔하고 경각에 달린 목숨이었다. 결국 아내는 떠내려갔다. 그 심정을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사는 이 땅은 저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목숨까지 바꿀 정도로 고대하던 축복의 땅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찾은 자유의 땅이건만 저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하고 일자리는 녹록지 않았으며 가진 기술도 없으니 지난한 삶이었다. 그렇다고 범법(犯法)의 사연마저 동정할 수는 없었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다시금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몸부림치는 현실이지만 곳곳에 돕는 손길이 있었다. 알게 모르게 저들을 안아 주며 감싸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렇게 강도 만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고민의 순간이 다가왔다. 작품마다 점수를 매기고 서열을 정하는 모순과 맞닥뜨린 것이다. 심사표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산문의 특성을 가늠하여 내용과 형식을 기준으로 삼았다. 감동이라는 진정성, 주제의 선명함, 미래의 투명성, 문단의 구성과 문장의 완성도 등이었다. 그렇다고 이 객관적인 지표가 절대적일 수는 없었다. 잘 쓴 글이든 부족한 글이든 저들은 이미 손이 아닌 몸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쓴 진실의 주인공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주 안에서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사단법인 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생활수기공모 심사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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