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오전 캘리포니아 주 세븐 트리스 인근 지역에서 규모 5.1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미 지질조사국(USGS)이 발표했다. 진앙지는 세븐 트리스에서 동쪽으로 14km 떨어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도 불과 64km 떨어진 지점이다. 이날 지진으로 실리콘 밸리와 샌프란시스코에서 건물의 흔들림이 감지되었다. 피해는 현재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24일에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예술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했으며, 총격범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망했다. 모교를 찾아가 총기를 난사한 19세의 총격범이 남긴 메모에는 “나는 친구가 없다. 가족도 없다.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없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나는 외톨이였다”라고 적혀 있었다. 세인트 루이스 경찰청장은 “이는 총기 난사범에게 완벽한 폭풍우였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지난 1년간(2021년 10월~2022년 9월) 적발된 불법 이민 시도가 237만 건이었으며, 미국 남쪽 국경에서 사망한 이민자는 856명이라고 발표했다. 

26일, 지난해 11월 위스콘신 주 밀워키 인근 도시 워커샤에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행렬을 SUV로 덮쳐서 6명의 목숨을 빼앗고 수십 명을 다치게 한 대럴 브룩스(40세)가 1급 살인 혐의 등으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같은 날, 아이오와 주 경찰은 고인이 된 아버지가 수십 년간 십수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한 여성의 주장을 수사하고 있다고 미 언론이 보도했다. 

또 같은 날 인디애나 주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고, 버려진 여행 가방에서 발견된 시신은 5세 남자아이 카이로 조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아이의 엄마를 비롯한 2명에 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대의 도전들은 성경적 진리와 도덕을 거부하는 포스트 크리스천, 포스트모던에 의한 근본적인 균열을 보여 준다. 이 위기는 예측 가능했고 실제로 예측된 것이다.

‘자본주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국부론』에서 “모든 사람이 정의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기업과 자본으로 다른 사람의 기업과 자본과 경쟁할 수 있도록 완전히 자유로운” 사회를 옹호했다.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정의, 진리, 순결과 충성과 같은]  의무를 끈기 있게 준수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존재 자체에 달려 있으며, 인류가 그런 중요한 행동 규칙에 대한 존중에 동감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는 무너져 버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조지 메이슨 대학의 경제학자 에릭 W. 맷슨은 이렇게 말한다. “스미스의 관점에서 그것이 자유이며,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자유의 중심에는 인류의 선에 대한 헌신이 깔려 있다.” 

프랑스의 역사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개인적 도덕에의 이러한 집중은 “미국인들이 자기 본위의 원칙으로 개인주의와 싸우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칙은 “일상적인 무욕의 작은 행위들을 가리키며”, “의지에 따른 미덕”으로 이끌면서, ”규칙성, 절제, 중용, 예지 및 극기의 습관 안에서 우리를 단련한다.“라고 토크빌은 말했다.   

미국 국부들은 합의된 도덕성이 자치에 필수라고 믿었다는 말을 나는 종종 한다. 우리의 헌법적인 견제와 균형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까지만 해당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자치가 가능한 국민을 요구한다. 1787년 헌법제정회의에서 한 여성이 미국의 정부 형태가 공화제인지 군주제인지를 물었을 때, 벤자민 프랭클린은 ”공화제다. 당신이 그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이라는 유명한 답을 했다. 

우리는 성경적 도덕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세속 문화에 필수임을 또 다시 실감한다. 

사실의 설명만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고 임상의들은 말한다. 그들이 변화를 원하지 않으면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적 진리가 개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우리 주님을 위해 담대하고 용기 있게 살아내는 일이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문화에 꼭 필요하다. 그 예와 본으로 시편 119:23-24를 읽어 보자.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 여기서 ”고관들“은 유대 민족의 지배자나 지휘관을 의미한다. 그들은 시편 필자에 대해 ”앉아서 비방“하고 있다. 이는 시편 작가를 해치기 위해 함께 모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부른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종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의 율례“에 마음을 모은다는 뜻이다. 국가 지도자들이 반대해도, 시편 기자는 ”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라고 고백한다. 나아가 그는 주의 증거들이 ”나의 충고자“라고 말한다.

성경적 진리에 대한 신실함은 반대자들로부터 박해받지 않는다고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율례를 묵상하고 날마다 율례대로 살았다. 

하나님은 인기 없는 순종의 행위를 모두 보시고 영원히 보상해 주실 것이다.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겔 48:11)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과 뜻을 향한 우리의 신실함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

오스왈드 체임버스는 말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고귀한 삶을 살려면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 항상 고귀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10월 27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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