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10월 29일 밤, 대한민국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할로윈 축제에 인파가 몰려, 최소 155명이 사망하고 152명이 부상했다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31일 발표했다. 이날 소말리아에서 연쇄 차량 폭탄 테러가 일어나 최소 100명이 사망하고 300명이 부상했으며, 소말리아 대통령은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30일 인도에서는 힌두교 최대 명절에 보행자 전용 현수교가 무너져 최소 141명이 사망했다.

28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남편 폴 펠로시는 샌프란시스코 자택에서 40대 괴한으로부터 둔기로 피습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머리와 손과 팔에 부상을 입은 폴 펠로시는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대체로 대단히 비예술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그것들은 그 조악한 폭력성, 완전한 모순, 의미의 터무니 없는 부재, 스타일의 전적인 결여로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다.”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그러한 일상의 고통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할로윈과 같은 휴일을 만들고 한 해에 걸쳐 휴일을 배열하는 게 그리 놀랍지 않다.

미국에는 설날부터 성탄절까지 그러한 휴일이 10개 있다. 가톨릭에선 일년 내내 120개의 서로 다른 날에 다양한 성인들의 삶을 기린다.

일부 휴일은 우리가 겪는 도전들로부터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휴일은 신앙에 초점을 맞추면서 교훈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미국의 공휴일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탄생이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특정한 날을 정하라는 명령이 없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말씀에 추수감사절이 가장 근접하지만, 일 년에 단 하루를 특정하지 않았다.

교회 전통은 11월 1일의 만성절, 또 그에 앞선 할로윈 이브와 같은 날들을 만들었지만, 그런 휴일도 세속적인 휴일일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휴일을 따르고자 한다면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야 할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 삶 속에서의 사건과 결정은 세 가지 범주, 즉 성서적, 성경에서 어긋난, 성경과 무관한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할로윈은 성경과 무관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를 명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성경은 오늘 성경적인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전도 행사로 오늘을 사용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헤 이웃과 사귀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다.

성경은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가르쳐 준다. 오컬트 행위(레위기 19:31), 혹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는”(요 10:10)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8:44)인 사탄을 숭배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원리는 일상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은 디지털 기술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은 디지탈 기술을 이용한 인터넷 제자 훈련을 독려하고 음란물 게시를 금지한다.

우리가 성경과 무관한 일을 성경적인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경에 어긋난 일을 피하는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단순히 본능을 따르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근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전에  에덴동산을 떠났을 때 우리가 그곳에 남겨둔 특권이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고통의 문제』에서 이렇게 썼다. “낙원의 인간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그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그에게 요구되는 모든 행동은 실제로 그의 나무랄 데 없는 성향에 맞았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 자체가 그의 크나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그 확실한 경계선이 없다면, 모든 기쁨은 시들해졌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나?’ 혹은 ‘내가 좋아서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은 예덴 동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 곧 아담이 하고 싶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봉헌이 기쁨이었으므로, 기쁨은 하나님이 받아들이실 수 있는 봉헌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축복받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 119:97)라고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사랑“은 ”열망하다, 기뻐하다, 숨쉬다“를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읊조리다“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사려 깊은 명상“을 의미한다. 이 두 구절은 서로를 강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공부하고 삶에 적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며, 성경을  공부하고 삶에 적용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상담가들은 우리가 ”느낌을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행동을 느낌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이 하는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사랑이 느끼는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성경대로 살면 살수록, 성경대로 살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가까이 머물라. 그리스도께 가까울수록 악마에게서 멀어지기 때문이다.“라는 빌리 그래함의 충고를 따르길 바란다. 어제보다 오늘 그리스도께 더 가까워졌는가?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