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 왕의 기도
히스기야 왕의 기도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


B.C. 8세기경 남유다는 사면초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었다. 남북 분열의 시대 또 다른 야곱이 후손이었던 북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손잡고 남유다를 공격하려 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남유다는 외교 전략을 총동원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얼마 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새로운 절대강자로 떠오른 앗수르가 서진 정책을 펼쳤고 시리아와 두로와 시돈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어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B.C. 722년) 이집트까지 진군하려고 했다. 길목에 있었던 유다는 당연한 정복 대상이었고 전쟁물자의 공급원이었다.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무너졌다는 소식,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군대가 몰려온다는 소식은 유다 백성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정복지에서 행한 앗수르 군대의 만행은 참혹함 그 자체였고, 고향을 떠나야 했던 피난민들이나 포로 또는 강제 이주민들의 삶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일대일로 싸울 힘이 없는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외국의 도움을 받거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어 대응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유다 왕이었던 아하스나 히스기야가 외국에 손을 내민 것은 어쩔 수 없는, 아니 적절한 위기 대응 전략이었다. 적어도 일반 외교, 정치,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 영적 거장이었던 이사야의 눈에는 어리석은 정책이었다. 결코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통찰력을 가진 이사야의 입장이었다. 임기응변으로 소나기를 피할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까지 이르게 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잘못된 것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라고 이사야는 주장했다. 창과 칼을 들고 당장 나서야 할 때 반성의 시간을 갖자 하고, 심장을 팔아서라도 옆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데, 그는 헛수고일 뿐 사람도 국가도 믿을 바 못 된다고 말했다. 

한 뼘의 땅, 한 목숨이라도 지키려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애쓰고 있을 때,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지금 일어난 재난과 불행을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며, 피할 수 없으니 담담히 깨어지고 처절하게 깨달아야 하고 새롭게 변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한다면 차분히 듣고 따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격분하거나 성질 급한 사람은 돌을 집어던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사야는 그렇게 말했다(그로부터 150여 년이 지난 후 더 참혹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예레미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런 비현실적인 조언을 받아들이고 성전으로 기도하러 달려간 왕은 히스기야였다. 당시에 인터넷이나 개인 언론 채널이나 광장 집회가 있었다면 전쟁터의 화살처럼 예리하고 거센 말들이 이사야와 히스기야를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루살렘 성만 남겨두었던 앗수르 군대의 십수만 명이 하루아침에 죽음을 당하고 전의를 상실해 원정길에서 돌아선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기 나라에서 살해당한다. 결국 앗수르의 정권이 바뀌었음을 일반세계사도 증언하고 있다. 

남유다는 군사력이나 외국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가사의한 어떤 힘에 의해” 위기로부터 벗어나고 나라는 한동안 평화를 되찾는다. 이 힘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종교적, 사회학적, 역사적 해석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결과가 보여 주는 확실한 교훈이 있다. 인간의 노력이나 리더십, 분석적이고 비평적인 사고, 꼼꼼한 정책과 제도, 철저한 예방과 수습책, 강력한 힘과 천문학적인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절대부정이 아니라 부분부정).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종합적 작용의 비밀’이나 이 모든 것 이외의 다른 힘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과학자나 사회학자, 평론가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신앙인은 초월적 세계의 존재와 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분석이 아니라 통찰해야 한다. 아래에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분풀이와 희생양 찾기에 힘을 소진하지 말고 백가쟁명식 목소리 내기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한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180도 바꾸어 전쟁, 재난, 사고 그리고 인생을 해석해 보았으면 한다. 이사야나 예레미야처럼.

(* 편집자 주 - 필자는 유튜브 PMITV 일일텐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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