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화살처럼, 아니 번개처럼 지난 느낌이다. 엊그제 새해 인사를 나누고 복을 빈 것 같은데 어느덧 세말(歲末)이 되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제정신을 빼놓고 마치 무엇에 홀렸던 것처럼, 마음으로는 원했지만 행동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내 속에서는 무엇이 작용했고, 또 다른 나는 어째서 전혀 다른 행동을 했던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하던 때 사울이 등장한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의 아들로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을 만큼 키도 크고 잘 생긴 청년으로 기록되어 있다(삼상 9:1-2).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뽑으려 할 때만 해도 용모만 준수한 것이 아니라 성품도 겸손하여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나오지 아니했다(삼상 10:22).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던(삼상 11:6) 사람으로, 많은 백성이 그를 좇았으며, 이로 인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하게 시작했던 그가 불순종으로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삼상 16:14) 했다. 악의 영이 그의 속에서 준동한 것이다. 악령의 준동을 막기 위해 신하들은 수금을 타는 사람을 불러 그의 곁에서 수금을 타도록 했고, 이때 다윗이 뽑혀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 16:23)고 했다. 그러나 악신이 그의 속에서 준동할 때면 또다시 이성을 잃고 번뇌하며 발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다윗이 그의 앞에서 손으로 수금을 탈 때 단창으로 그를 살해하려고 했고, 자신을 위해 큰 공을 세우기도 했건만 배은망덕하게도 다윗을 끝까지 쫓아가 죽이려 했던 것이다.

요즈음 한국 기사를 보면 악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니고야 어찌 망국을 위해 그토록 염원하며 준동하는 것일까? 거짓말을 하고도 천연덕스러운 얼굴은 철판보다 두껍고, 자신들의 사소한 이익을 챙기는 데는 국가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철면피들이 피를 솟구치게 한다. 

성공회 신부라는 한 인간이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다음과 같이 염원했다는 소식에 화가 치밀기 앞서 가슴이 저려옴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 인터넷 강국에 사는 우리가 일시 정해서 동시에 양심을 모으면 하늘의 별자리라도 움직이지 않을까”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가 하면, 천주교 대전교구 및 정의구현사제단에 소속된 신부는 출입문이 열린 대통령 전용기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추락하는 합성사진과 “기체 결함으로 인한 단순 사고였을 뿐 누구 탓도 아닙니다. 비나이다~비나이다”라는 글귀를 SNS에 올렸고, 이에 앞서“경찰 분들!!! 윤석열과 국짐당이 여러분의 동료를 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무기고가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라는 글로 경찰관들을 부추겨 총과 칼로 유혈극을 일으키도록 하는 망국을 염원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서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속에서 악의 영이 준동하지 아니한다면 과연 이러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붉은 악마에게 갖다 바치고 그 밑에서 피골이 상접하도록 굶어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부럽고 좋단 말인가. 왜 그러한 자들은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 땅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그렇게 동경하는 북한으로 가서 살지는 아니할까? 

이 해가 가기 전에 우리 스스로도 살펴봄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9)라는 사도 바울의 탄성대로, 지난 한 해 동안 사탄의 종으로 끌려다니지는 아니했는지 반성해 봄이 마땅하다. 그래서 오는 새해에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심을 받은 새 사람”(엡 4:24)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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