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순간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라"

11월 19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성 소수자 나이트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 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했다. 13일 밤에는 버지니아 대학교 주차장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식축구팀 선수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했다. 같은 날 아이다호 대학생 4명이 캠퍼스 인근 한 주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려운 시기에 이 말씀을 읽으면 범사를 “위해”가 아니라 범사에(모든 상황 안에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극과 고통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엡 5:20)하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매 순간과 모든 환경 속에서 항상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 없이 그래야 한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대량 학살에도 감사하길 원하실까? 1백만 명 넘는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감사해야 할까? 4만 명의 우크라이나 시민을 죽이고 1,500만 명에서 3,000만 명의 우크라이나 시민을 난민으로 만든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러시아의 침공에 대해서도?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자주 그러하듯, 문맥이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열쇠이다. 에베소서 5:20,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의 가르침보다 먼저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18절)는 명령이 나온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헌신이자 훈련이다. 우리의 삶을 성령에게 매 순간 맡기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고, 인도하시고, 사용하실 것을 청하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19절)고 명한다. 사적이든 공적이든 참된 예배는 성령의 권능과 인도에서 나온다.  

감사하는 삶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20절). 성숙한 섬김의 라이프스타일도 그러하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21절).

감사하는 삶을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영의 권능과 인도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의 열매를 맺으신다. 이러한 “열매”는 어떤 어려움이나 상황이 닥쳐와도 감사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분명 죄에 대해선 감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죄를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딤전 6:11) 따라야 한다.

또 우리는 감정을 감사의 잣대로 삼아선 안 된다. 팀 켈러의 말이 옳다. “고마운 것과 감사한 것은 다르다. 고마움은 당신의 느낌이다. 감사는 당신이 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살전 5:18) 하고,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엡 5:20)해야 한다. 우리는 감정을 돋우려 하지 말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 

버지니아 대학교의 비극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세 명의 젊은이가 잔인하게 살해된 일에 감사해선 안 된다. 우리는 유가족이 겪는 아픔에 감사해선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추도 예배에서 코치가 말한 ”세상의 빛“이 된 데빈 챈들러와 레이블 데이비스 주니어와 션 페리에게 감사할 수 있다. 데이비스는 집에 오면 언제나 교회에 갔으며 설교를 잘 듣기 위해 맨 앞줄에 앉았다고 데이비스의 가족은 말했다. 코치는 세 명의 선수들이 남겨준 것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며,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세 젊은이의 유가족뿐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눈물을 흘리듯이 눈물을 흘리신다(요 11:35). 우리의 아버지께선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신다“(시 147:3).

우리는 이런 일이 늘 일어나지 않을 것에 감사할 수 있다. 비극의 와중에도 예레미야애가의 저자는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3:58)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을 것이다(계 21:4). 그래서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5절)라는 약속을 주장할 수 있다. 

우울증과 자살로 아들을 잃은 고통을 겪은 릭 워렌 목사는 이렇게 충고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떠하건 “행복한 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라. 힘든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아라. 고요한 순간에는 하나님을 경배하라.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매 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목사의 11월 21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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