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양치기들의 경배(독일 화가 마티아스 스토머, 1632) 위키피디아
양치기들의 경배(독일 화가 마티아스 스토머, 1632) 위키피디아

12월 초 산책하던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이 갈릴리 북부 지역에서 2천 년 된 점토 등잔을 발견했다. 2007년 예루살렘 다윗 시에서 발견한 히스기야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문을 판독한 결과 고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소식도 최근에 나왔다. 

그리고 이스라엘 타임스는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이 전통적으로 살로메와 관련된 고대 무덤을 발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초기 전승은 그녀가 베들레헴에서 예수님 탄생 시 함께한 산파였다고 추측했다. 정말 마리아는 예수님 탄생 시 산파의 도움을 받았을까? 이 질문은 성탄절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러한 전승은 '야고보의 프로테반젤리움'이라 불리는 외경에서 비롯되었다. 외경은 살로메가 산파라고 주장하지 않지만, 그녀는 동정녀가 출산하는 기적을 목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살로메는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마리아를 검사해 그녀가 여전히 동정녀임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불신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보소서, 내 손이 불타는 것처럼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울부짖었고, 치유를 받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책은 마리아가 세 살 적에 천사가 성전에서 음식을 먹였다고 주장한다. 요셉은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에서 비둘기가 날아간 후 마리아의 남편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산이 갈라져서 어린 세례 요한이 살인자 헤롯 왕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야고보가 쓴 것이라 말하지만, 초대 교회는 이 책은 물론 야고보가 썼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문화가 '야고보의 프로테반젤리움'을 보는 눈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성경적 설명을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외경의 내용을 인용해 보았다. 

미국 성인의 80%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고 말한다. 72%는 예수님이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미국 성인의 63%만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미국 성인 수백만 명은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면서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텍사스 주 휴스턴의 사랑 넘치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어렸을 적에는 열심히 교회에 갔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참혹한 일을 겪으신 후, 교회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가보지 못했고 성경도 접하지 못했다.

만약 청소년기의 나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다면, 그렇다고 답했을 것이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이유를 물었다면 예수님이 그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왜 성탄절에 태어나신 것인지,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물었다면,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에 대한 내 믿음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 중 나도 한 명이었다.

동네 친구 두 명이 지역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신앙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교회에 나오라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기쁨과 평화, 내가 놓치고 있던 의미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주일, 나는 주일학교 선생님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물었고, 선생님은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을 갖게끔 나를 인도해 주었다. 

그 후 나는 종교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네 개의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종교철학, 기독교 변증론을 가르쳤다. 나는 우리 시대의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들과 교류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적보다 신화로 여기는 이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영향은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증거로 보여 주는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친구들이 먹어 보고 추천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볼 가능성이 크다. 살찐 피트니스 강사나 치아가 건강하지 않은 치과 의사를 선택할 가능성은 적다. 

우리가 세상이 보아야 하는 변화의 본이 될 수 있는 변혁적인 힘에 가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삶을 성령님께 드리고(엡 5:18), 우리를 좀 더 예수님처럼 만들어 달라고 간구할 때(롬 8:29), 성령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사용해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한다.

그리스도를 닮는 일은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변함 없는 계획이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스텔라의 이삭은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여러 형제 중 맏아들이다. 그는 본래 외아들이지만, 은혜로 많은 이들을 그 자신과 결합하여, 그들을 자신과 하나되게 하셨다.” 그런 다음 그는 요한복음 1:12을 인용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A. W. 토저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속성의 충만함 속에 있는 삼위일체의 온전한 힘은 우리를 예수님처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다른 모든 것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시인 로버트 번은 “인생의 목적은 목적이 있는 삶”이라고 묵상했다. 오늘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 편집자 주 - 문화사역자 짐 데니슨 박사의  12월 21일 칼럼 발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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