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백성일지라도 절망적인 위기는 결코 사라지지 아니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을 한꺼번에 받은 이스라엘 백성, 이방이 시기하고 질투하리 만큼 그들은 하나님께 눈동자처럼 아낌과 보호를 받기도 했다. 애굽에서 바로 왕의 학대로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이적의 베푸심을 받고 심지어 애굽의 장자를 모조리 쳐 죽이기까지 하시며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랑하던 백성일지라도 그들 앞에 위기가 가로막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애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던가! 이왕 애굽을 탈출하기 위해 그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으면 탈출 후에는 탄탄대로로 시련도 고통도 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 곧바로 전진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탈출하자마자 죽음의 바다 홍해가 가로막을 줄은 아무도 기대하지 아니했다. 앞에는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출렁이는 험한 파도에 벌벌 떨어야 했고 뒤에는 금방이라도 따라붙을 애굽군의 칼과 창의 위협을 받아야 했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글자 그대로 절망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역도 결코 평탄치만은 아니했다. 맡기신 사역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깊이 생각도 했지만 때로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것을 보면서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왜 지켜주지 아니하실까 하는 의심마저 솟구치는 경우도 없지 아니했다. 우리가 운영하는 기독의료상조회는 순수 나눔의 사역으로 일반 의료 보험 회사가 아님에도 미 각주 보험국에서 이에 대한 간섭과 조사가 만만치 않다. 

지난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 운영진은 모 주의 보험국의 호출을 받아 수일간 청문회를 겪어야 했다. 물론 우리 기관만이 아니라 동종의 미국 기관들도 더 심한 조사를 받아야만 했으며 모 기관은 폐쇄 조치, 아니면 운영진이 교체되는 경우도 없지 아니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에 온 실무진들이 동원되어 긴장하며 세세한 자료를 찾아 검토하고 준비해야만 했다. 다른 동종의 단체에 비하면 우리는 소규모에다 송사 사건이나 재정 운영상 하자가 없었기에 청문회를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었으나 다른 외국 기관들은 일주일 이상 청문회를 지속한 경우도 없지 아니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한 주의 청문회를 정신없이 끝내고 겨우 한숨을 돌릴 만 했으나 또 다른 주에서 같은 요청을 해옴으로 미국의 법률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결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맞이할 때마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유대인이 바벨론의 포로 시절 유대 총독 스룹바벨의 외침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4:7)는 외침. 솔로몬의 아름다운 성전이 훼파되고 나라마저 잃고 쫓기던 때 스룹바벨 총독은 바벨론 왕의 칙령으로 제2성전을 건축하도록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본국으로 돌아와 성전 짓기를 착수했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의 훼방으로 그리던 성전 건축이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그들의 악랄한 모략과 중상으로 오랫동안 성전 건축을 중단해야 했으며 이는 결코 넘지 못할 큰 산 같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나 믿음의 사람 스룹바벨의 강한 외침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는 믿음의 외침에는 온갖 훼방꾼들의 방해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듯 하여 끝내는 하나님의 성전이 완공되었다.

우리는 금년 한 해 역시 결코 평탄치만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가 앞을 가로막을 때 마다 믿음으로 외칠 것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주께서 맡기신 사역 앞에서는 평지가 되리라’고. 어떠한 훼방도 공격도 믿음 앞에서는 평지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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