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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니엘 목사(크리스찬저널 편집부장)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큰 영광이고 소망이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선택해 쓰셨고, 쓰실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한데, 성경을 통해 그 힌트를 얻고자 한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마 21:2-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다. 제자들이 겉옷을 벗어 나귀 등에 얹어 예수님께서 타시도록 했다(막 11:7).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 나귀 새끼를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막 11:2, 눅 19:30)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나귀 새끼만이 아닌 매인 나귀도 함께 있어서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 모두를 예수님께로 끌고 왔다고 전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중 매인 나귀가 아닌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다. 

나귀는 이동하지 않고 들에 머물 때나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매어둔다. 매인 나귀는 묶여 있는 나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어서 짐이나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안장을 앉힌 나귀를 의미한다. 이미 사람을 태우고 짐을 나르는 경험이 많은 나귀를 뜻한다. 반면 나귀 새끼는 한 살에서 4살 정도의 어린 나귀로 마가와 누가복음에 설명되어 있듯이 아직 아무도 태워 본 적이 없는, 안장이 없는 나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어린 나귀는 사람이나 짐을 태운 경험이 없기에 싣고 가다가 실수할 가능성이 많은 나귀이다. 어린 나귀는 훈련을 위해 짐이나 사람을 태우고 가는 나귀 옆에 따라가곤 했는데, 대부분 등에 안장이 없는 상태에서 안장이 있는 나귀 곁에 있었다.   

만약 우리가 나귀를 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 두 나귀 중 어떤 나귀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고 현명할까? 대다수는 사람을 태워본 경험이 있는 안장을 앉힌 매인 나귀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안장도 없는 어린 나귀를 선택해 타셨다. 안장을 앉히지 않고 나귀를 타는 것은 불편하고, 균형을 잡기도 어려워서 위험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은 매인 나귀인 경험 많은 나귀를 쓰시지 않고 안장이 없는 초보 나귀를 쓰셨다. 왜 예수님은 경험 없고 잘하지 못하는 초보 나귀를 타셨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예수님은 나귀의 능력과 경험을 의존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난 파도도 말 한마디로 잠잠케 하셨기에 주권자 되신 주께서 필요하면 주의 능력으로 쓰실 것이다. 

사람을 쓰실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모세를 보면 더 이해할 수 있다. 모세가 애굽 공주의 양아들로 왕궁에 있을 때, 히브리 사람들이 자기가 그들을 구원해 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기 원해 싸움 중인 히브리 사람을 위하여 나섰다가 애굽인을 쳐 죽이는 살인자가 된다. 그런 그가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80세에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지만, 오히려 그는 다섯 번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한다.

광야에서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손에 길들여졌다. 잠언 18장 12절에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라고 하셨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을 의존하시지 않기에 겸손한 자를 선택해 쓰신다. 하나님이 능력자이시기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게 하시기에, 비록 능력이 없고 경험이 없는, 안장도 없는 나귀이어도 예수님은 안전하게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이다.   

성경 인물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설교자 무디를 보아도 어떻게 하나님이 이러한 자를 쓰셨는지 알게 되면 놀랍다. 무디가 네 살 때 부친이 급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 혼자 꾸려가는 살림이라 13세 되던 해에 공교육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겨울에만 공부하고 여름에는 남의 집에서 목동의 일을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853년 16살 때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홀톤 양화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무디의 교회학교 교사인 에드워드 킨볼은 무디에 대해 말하기를 영적으로 완전히 무지한 상태인 데다 성경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고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콧소리를 내고 음성도 좋지 못하며, 교육도 받지 못해 글은 문법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육을 잘 받고, 성경 지식이 많으며, 목소리가 출중한 사람이 아닌, 안장이 없는 무디를 선택해 영국 런던에서만 285차례 전도 집회를 이끌도록 하셨다. 그리고 미국에서 매일 7~8천 명의 군중이 모인 집회를 인도할 뿐만이 아니라 1895년에 시카고 기독교서회를 설립해 성서와 찬송가, 기독교 서적을 보급하였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안장도 없는 사람을 선택해 쓰신 이유가 뭘까?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 그 이유가 잘 나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어 쓰임 받았기에 그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고, 자랑도 교만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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