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동용 박사

창세기 1장의 창조 첫째 날에 나오는 요소들은 시간, 공간, 물질, 그리고 빛이다(창1:1-5). 그런데 오늘날 과학자들 역시 우주의 건축 자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과 빛이라고 말한다. 또 과학자들은 시간, 공간, 물질은 연합되어 있어서 서로 나눌 수 없고 또한 빛이 없는 이들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면 이렇게 4가지 요소로 우주가 이뤄졌다면 이 우주의 끝은 무엇일까? 즉 시간, 공간, 물질, 그리고 빛으로 이뤄진 우주의 경계는 무엇인가? 이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보지 못한 입장에서 답을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이는 시공 속에 제한된 물질계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즉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시공의 물질계를 넘어서 창조를 증거하는 성경을 살펴보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성경의 첫 구절이며 하나님이 하신 첫 번째 일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신 하나님이 무언가를 창조하셨다. 태초라고 하는 시간의 시작과 동시에 하늘이라는 공간과 지구라는 첫 물질이 생긴 것이다. 여기서 시간-공간-물질이 모두 동시에 함께 창조된 것을 말한다. 과학자들은 시공 속에 있는 물질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시간-공간-물질 이 세 가지를 함께 표현하는 것은 이들을 각각 구분해서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첫 구절에 사용된 창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라(Bara)이며 이는 절대 무(無)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여기서 절대 무(無)라는 개념은 시간, 공간, 물질, 그리고 빛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끝, 다시 말해서 우주의 경계는 절대 무(無)와 유(有)의 경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 무(無)를 알지 못하면서 우주의 끝이나 그 한계를 논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그러면 성경의 기술을 좀 더 살펴보자. 첫 성경 구절에 나오는 시간-공간-물질의 창조는 아직 빛이 없는 상태이다. 왜냐하면 빛에 대해서는 3절에 처음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과학에서 빛은 물질이 아니며 빛은 물질의 필수 요소라고 본다. 빛이 없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창조는 오직 전능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첫 구절의 창조된 공간과 물질에 대해 둘째 구절에서 형체가 없고 비었다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 공간은 비었고 물질은 형태 없는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형태가 없는 물질, 즉 아직 형태가 결정되지 않은 물질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나? 상상도 할 수 없다.

창세기 1장 1절에 등장하는 첫 번째 피조물은 시간이다. 시간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시간이 존재하고 아무도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 없다. 그러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엇일까?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시간을 벗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창조하신 분은 시간을 초월한 분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원하신 분이라고 부른다. 그런 면에서 바울 사도는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38-39)라고 기록한 것은 시간도 피조물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시간을 초월하는 전능하신 분의 뜻임을 말해준다.

우리가 시간 자체를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주의 한 구성 요소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피조물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는 지구와 달과 해를 통해서 계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놀라운 지혜이다(창 1:14).

창세기 1장 1절에 등장하는 두 번째 피조물은 공간이다. 공간은 무엇인가? 공간은 전후좌우 그리고 위와 아래가 있는 3차원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면 이 우주에 공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모두 공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아무도 공간을 벗어나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공간의 창조자는 공간을 초월하신 분임이 틀림없다. 성경은 그분을 무소부재하신 분이라고 부른다. 어떤 과학자는 우리 몸에서 공간을 모두 빼낸다면 나머지 물질은 바늘 끝 안에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고 말한다. “정말일까?” 이 의아스러운 반응에 조금만 설명해도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물질의 특성을 갖는 가장 작은 단위는 분자다. 우리 몸은 분자로 되어 있고 분자는 더 작은 원자로 되어있다. 하나의 원자는 가운데 핵이 있고 그 둘레를 전자가 돈다. 그런데 핵과 전자 모두 부피가 거의 없고 공간이 99.99…% 차지한다. 실제로 핵과 전자는 모두 물질일까? 이들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역시 대부분 공간일 것이다. 즉 우리 몸이 거의 전부 공간으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몸뿐 아니라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있으므로 거의 전부가 공간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모든 것들이 거의 공간이므로 경계가 없이 서로 잘 통과될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들어 물질인 몸과 벽 모두 공간이므로 몸이 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몸이 벽에 부딪히면 머리에 혹이 나버린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과 무엇이 부딪힌 것일까? 확률적으로도 물질끼리 부딪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엄밀히 말하면 물질과 물질이 아니라 공간 속의 힘들이 충돌한 것이다. 분자와 분자, 핵과 전자, 핵 속의 미립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그 공간 사이를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이들을 분리시키려고 하여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서 핵과 전자뿐 아니라 모든 물질은 서로 당기는 인력이 있다. 그리고 상호 작용하는 이 힘을 벗어나지 못한다. 욥기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이렇게 질문하신다. “누가 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욥38:38). 정말로 근본적인 질문이다. 과학자들이 지금껏 고민하던 질문 아닌가? 즉 하나님 자신이 이미 처음부터 공간에 서로 달라붙게 하는 성질을 넣었다는 말씀이다. 만약 서로 당겨주는 힘을 처음부터 창조하지 않았다면 어떨까? 물질이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선 바로, 이 질문을 하신 것이다. 공간에 이 특성을 넣을 수 있는 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전능한 분임이 틀림없다.

창세기 1장 1절에 등장하는 세 번째 피조물은 물질이다. 마지막 질문은 물질이다. 물질은 질량을 가지며 그 질량은 공간을 점유한다. 그러므로 공간으로부터 물질을 분리할 수 없고 반대로 물질로부터 공간을 빼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 물질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역시 알 길이 없다. 우리는 한순간도 물질을 초월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공간-물질을 동시에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신 분이며,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한 분이며, 불가능한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임이 틀림없다.

역사는 시간+공간+물질의 흐름

우주는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로 이뤄졌고 역사는 시간+공간+물질의 흐름이다. 따라서 우주는 매시간 순간마다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휴가를 다녀오면서 “다시 집에 돌아왔구나”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러나 따져 보면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미 시간이 지났고,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했기 때문에 공간도 이미 바뀌었다. 또 그사이 공기도 바뀌었고, 집도 부식되었다. 결국 물질도 이전과는 다르다. 돌아왔다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시간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종교는 인생을 윤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절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인생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 9:27)라는 이 성경 말씀은 각 인생에 대한 정확한 지적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인생과 역사는 오직 하나다. 이 인생과 역사는 원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직선이다. 성경은 성경의 첫 절을 통해 우리 각자의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묻는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직선의 인생길을 시공과 물질의 창조주와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혼자 갈 것인가?”

창세기의 첫 구절은 우리에게 바로 그 창조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창조자가 우리의 구원자일까? 그렇다! 과연 이분 이외에 누가 진정한 구원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이 창조자만이 나의 구원자’라는 믿음을 일관되게 요구한다. 전능한 분 외에 진정한 구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역사가 있다. 그가 겪은 역사는 단 하나뿐이다. 물론 내 주위의 모든 사람과 만물의 역사도 단 하나뿐이다. 지구, 해, 달, 별, 동물, 식물, 인류 모두 각각은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역사를 이루며 경험한다. 각각이지만 결국 다른 시공에서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한 역사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므로 첫 절인 창세기 1장 1절이 말하는 바는 이제부터 언급될 이야기인 시간-공간-물질 속에 우리 모두의 역사를 말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약 창세기 1장 1절을 받아들인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창조 역사와 그 이후의 기록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고백이 필요하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창세기 1장 1절은 받아들이지만 1장의 다음 내용 중에는 그대로 믿지 않는 것도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1장 1절에 대한 바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와 닿지 않거나,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말에 더 신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면 수십억 년 동안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생물들로 진화하고 또 진화와 멸종이 반복되어 드디어 인간이 되었다는 진화 역사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Irreversible History)

역사란 시간-공간-물질의 흐름이고 돌이킬 수 없다. 이 세 가지를 돌이키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란 과거에 하지도 않았던 것을 했다고 하고, 현재 하지 않고 있으면서 한다고 하며,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공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도 이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돌리려고 한다면 하나님 자신도 거짓말을 하는 분이 되기 때문이다. 첫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 정말 안타까우셨지만, 하나님께서 돌이키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돌이키셨다면 스스로 거짓말하는 분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품의 문제다.

* 이동용 박사(항공우주 공학박사, 창조과학선교회 강사, MCC & ECC 물리학 교수), 저서: The Universe of Dynamics-Fearfully & Wonderfully Made in Awesome 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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