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7:1-20

시편 147편은 열정과 기쁨과 감격과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찬양 시입니다. 형식적 찬양이 아니라 찬양의 구체적인 이유를 16가지나 나열하고 있습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심”에서부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심”까지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찬양의 이유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 때문에 기뻐하고 감격해 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뜨겁게 감사 찬양을 해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형식과 습관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조용히 즐기는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정직하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을 가리켜 성경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아니한, 그래서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버릴”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열정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열정을 통하여 복을 받을 수도 있지만, 화를 입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열정이 지닌 단점이나 위험성만 보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인 드라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광주의로 포장된 작품에는 진실이 들어있지 않다. 열광주의 작가는 모든 것을 편견과 독단으로 판단한다. 비뚤어진 것은 곧은 것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열광주의는 잘못하면 독단적 교리주의를 낳고 교리주의는 무자비한 폭력까지 휘두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는 본래 철저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주의자였던 그는 복음을 반율법주의라고 단정하고 기독교 박멸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여러 해 후  바울은 “그 때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면서 실은 악행을 하는 광신도가 될 수 있습니다. 광신도들의 독단이 저지른 역사의 상처와 손실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열광주의의 또 다른 위험성은 군중을 선동하여 폭도로 돌변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당이 장악했던 뉴렌버그 의회의 “시그 하일스(Sieg Heils)”는 그 단적인 예입니다. 북한 공산당의 선동 선전, 대중 세뇌, 집단 살인극은 가장 가까운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열정을 무조건 배격해야 할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열정이 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열정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첫째, 신앙의 열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 것입니다. 우선 신앙의 열정이 화를 입히려고 쳐들어온 침략자라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오도된 열광주의의 폐해는 유감스럽지만 그렇다고 평생 열정 없이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더욱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열정은 뜻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냉정한 사상가로 알려진 에머슨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들은 모두 열정의 승리였다. 열정 없이 위대한 일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초대 교회 당시 기독교 신앙을 ‘인생의 새로운 도’(New way of life)라고 불렀습니다. 복음이 분명한 삶의 목적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촉구합니다. 그 목적을 위해 교회 공동체 중심의 생활을 하라고 권고합니다. 교회는 신앙에 근거한 생의 목적을 향한 열성과 충성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과 뜨거운 열정은 언제나 손잡고 함께 갑니다.

열정의 반대말이 냉담, 무관심 등입니다. 백성이 국민의 의무나 책임에 냉담하면 나라는 오래잖아 독재 국가로 전락할 것입니다. 교인이 교회 생활에 무관심하면 교회는 오래잖아 쓸모없는 오합지중이 될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열렬한 관심과 충성심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교회 부흥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가 화단에 고무 호스로 물을 주다가 실망한 듯 외쳤습니다. “아빠 물이 안 나와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호스를 밟은 발을 치우렴.” 소녀가 고무 호스를 밟고 있어서 물줄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소녀가 발을 치우자 물은 다시 힘차게 쏟아졌습니다. 소녀는 호스가 막히는 이유를 배웠고 재미있는 물 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가지 약속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신앙을 위하여 열성분자가 될 것을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삶의 본질적 요소로 삼고 충성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임마누엘(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고, 참된 기쁨과 평안과 새 생명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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