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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다니엘 목사(크리스찬저널 편집부장)

영화 밀양(密陽)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2007년경에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경상남도 밀양의 도시를 먼저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영어 제목처럼 “Secret Sunshine”이 눈에 들어왔다. 밀양의 한자는 촘촘한 또는 은밀한 밀(密)과 햇볕 양(陽)이 만나서 가득 찬 햇볕 내지는 비밀스러운 햇볕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영화의 제목이 뜻하는 바가 영화 스크린 곳곳에 투영되어 있었다. 주인공 이신애가 나오는 주요 장면에서 그녀는 못 느끼는 것 같지만, 햇볕이 스며들듯이 이신애 주변 자리를 잡고 비추고 있었다. 자동차 안에서 차창 너머의 쨍한 햇살을 보여주는 영화 첫 장면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지저분한 땅을 비추는 햇살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늘 이신애 주변을 비추는 밀양이 있었다.

밀양 영화 첫 장면(사진-영화 캡처)
밀양 영화 첫 장면(사진-영화 캡처)
밀양 영화 한 장면(사진-영화 캡처)
밀양 영화 한 장면(사진-영화 캡처)
밀양 영화 마지막 장면(사진-영화 캡처)
밀양 영화 마지막 장면(사진-영화 캡처)

영화 밀양의 내용은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온 이신애가 피아노 학원을 차려 잘 정착해 보려 했으나, 아들이 다니던 학원의 원장에게 유괴당해 살해된 사건을 겪으며 절망과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고통 속에 울부짖는 이신애는 교회 부흥 집회를 계기로 믿음 생활을 시작하는데, 교회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며, 신앙 좋은 모습으로 살다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겠다고 그 살인범을 찾아간다. 교도소 면회에서 살인범은 이신애에게 자기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며, 무거운 짐을 벗은 듯한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생각지 못한 모습에 이신애는 분노에 차올라 그를 용서한 하나님을 증오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과 내용을 통해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 인간이 겪은 고통과 아픔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온전히 이해되거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고, 또 진정한 회개와 용서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한편, 김영봉 목사가 쓴 책 『숨어 계신 하나님』(IVP)에서 또 다른 의미의 힌트를 찾았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은 하늘 가득히 쏟아져 내리는 햇볕이다. 눈부시고 화려하고 격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이다. 밀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믿을 거라고 말을 한다. 기적이나 신비한 체험을 해도 쉽게 그분의 말씀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이적, 즉 표적을 구하였다. 실제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수많은 이적과 권능들을 나타내시어 오병이어의 기적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며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보이셨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요한복음 6:2),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요한복음 6:14).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표적을 요구했고, 보여주신 놀라운 이적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2:38-39).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조차도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8-9).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실체를 직접 보거나 경험하길 원한다. 특히 어려움이 닥칠 때,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도 나에게는 한줄기 강력한 빛이 어두운 구름을 뚫고 비추길 원하고 있다. 병이 치유되고, 관계가 회복되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잘 안된 것이 잘 되길 원한다. 그러한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길 원하고, 누가 들어도 놀라울 정도의 간증을 하길 원한다.

김영봉 목사는 “한국교회의 간증 문화에 대해 심각한 반성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나아가 급격한 체험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비밀 햇볕처럼 조용히 그러나 늘 변함없이 우리를 비추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것을 당부한다.”라고 말한다. 영화 밀양에서 이신애는 은혜약국 김 집사가 약국에 비추는 햇살을 가리키며 “저기 햇볕 한 조각에도 주님의 뜻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이신애는 약국 구석으로 걸어서 햇빛에 손을 뻗으며 "이거 그냥 햇빛이에요. 햇빛. 여기 뭐가 있어요?"라고 웃으며, 늘 변함없이 비추는 밀양과 같은 은혜를 간과하는 자신을 보여주었다 .

그러한 이신애가 개척 교회 부흥회에서 절규하다가 급속도로 변하였지만, 영화의 전반부에서 이신애가 연고도 없는 남편의 고향 밀양에 남편의 뜻이라며 간 것도, 복부인 행세를 한 것도 진실이 아닌 것처럼, 그녀가 나중에 간증하고, 전도하고, 심지어 아들 살인자를 용서하겠다며 교도소로 간 것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종교적 포장은 또 다른 포장처럼 보이는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원수의 말에 뜯겨서 그 속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분노에 못 이겨 쓰려져 병원으로 간 그날 밤은 유일하게 영화 장면에서 맑은 날이 아닌 비가 쏟아졌다.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이신애에게 닥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는 밀양 같은 은혜보다는 강력한 한 줄기 빛 같은 은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큰 이적과 은혜가 있어야 해결될 것 같고,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고,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던 것처럼 무언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어쩌면 늘 원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 그를 바라보시고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다. 오히려 빌립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는 말에 격분해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에 따라 베들레헴 출신으로 나타나야지 갈릴리 지방의 한 마을인 나사렛은 당치도 않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셨지만,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하셨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라 불리었다(마태복음 2:23).

하지만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자신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말하자,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놀란다. 하지만, 예수님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는 말씀에 자신을 보고 계셨던 예수님의 시선을 깨닫고는 그가 메시아임을 고백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메시아의 표적을 구하였지만, 나다나엘은 강력한 이적도, 능력도 아닌 조용한 말 한마디에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되심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구원하신 그 큰 사랑을 깨달아 아는 것은 정말 큰 은혜이다.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아무런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 은혜가 때로는 밀양처럼, 때로는 강력한 한 줄기 빛처럼 우리를 비추고 있다. 기적과 같은 햇빛을 원할지라도, 비밀스럽게 조용히 그러나 늘 변함없이 우리를 비추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 밀양을 간과하지 말자. 밀양처럼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다면 나다나엘처럼 그 밀양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만나고 더욱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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