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 강단 (31)

임다니엘 목사(크리스찬저널 편집부장)

시편 27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이 있고 그것을 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다윗이 당시 처한 상황을 알게 되면, 다윗이 구하는 고백이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윗은 통치 말년에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 밖으로 쫓기고 있을 때였다.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지만, 다윗의 장남 암논은 이복 여동생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간함으로 압살롬에 의해 살해되었고, 둘째도 성경에 이름만 나올 뿐이어서, 셋째인 압살롬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되려고 4년 준비 끝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민심도 압살롬에게로 오게끔 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하고 울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을 거쳐 여리고로 가는 광야 길로 갔다.

그런데 시편 27편에서 다윗은 어떤 악인도, 원수도, 그 누구도 두렵지 않고 무섭지 않다고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3절). 심지어 군대가 자신을 대적해도 전쟁이 일어나서 자신을 죽이려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반란의 군대가 자신을 죽이려 올 때 어떻게 그 상황에서 태연할 수가 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백범일지에 김구 선생님의 유명한 “나의 소원”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70평생을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성하려고 살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 한 가지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단번에 “대한의 자주독립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답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고백했듯이 칠십 평생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이 소원을 위해 살고,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백범 김구 선생님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분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요.”라고 말이 나올 정도로 온 마음과 몸의 세포까지도 그의 소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 1,000마리의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린 내용이 있다. 솔로몬 왕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가장 큰 산당인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천 마리의 짐승을 제사로 드리다 보니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오랜 시간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내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6)라고 물으셨다. 누구나 바라던 순간이지만, 아마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같이 꿈에 나타나셔서 한 가지 소원을 물어보신다면, 당황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어서 바로 대답이 안 나올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바로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7~8절에 나와 있듯이 솔로몬이 스스로가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앞가림도 하기 급급하여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위대한 왕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을 감당하기가 무척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천 마리의 짐승을 제사로 드리면서 밤낮 왕의 무게를 어떻게 견딜지 고민하며, 기도하는 어린 솔로몬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하나님께서 한 가지 소원을 물을 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는 대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솔로몬이 “듣는 마음”(understanding heart)을 구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왕상 3:12). 하나님은 솔로몬이 자기를 위해 장수나 부귀나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한 것(왕상 3:11)에 기뻐하시고,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왕상 4:29).

누가복음 10:38-42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준비에 정신이 없었는데, 동생 마리아는 자신을 돕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만 있었다(눅 10:39). 마리아가 자기 말을 듣지 않자, 마르다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고 마리아가 좋은 것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셨다(눅 10:42).

마리아가 왜 언니를 돕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을까? 아마도 당시 회당에서 말씀을 듣는 기회가 없는 그녀에게 예수님의 놀랍고 통찰력 있는 말씀은 그녀를 떠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겠지만,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말씀을 사모하여서 누군가 마리아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묻는다면, 그녀는 평생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다윗은 왕으로서 절대 권력이 있고 많은 경험과 지혜가 있으며,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재산이 있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다윗이 가진 금과 은만을 현재 시세로 계산해 보면 약 343조 원이나 된다고 한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탈환했는데 그의 순자산이 253조 원이라고 한다. 다윗은 이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최고의 부자인 셈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위급 상황에서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 소원이 왕위를 보존하는 것도,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도, 재물을 지키는 것도, 원수들을 무찔러 달라는 것도 아닌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윗의 이 고백은 그 순간에 어쩌다 나온 소원이 아닐 것이다. 백범 김구도, 솔로몬도, 마리아도, 그들이 자신의 소원을 바로 고백한 것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 소원만 이루어지길 원하고 또 원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소원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 소원을 물어보신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바로 할 수 있을까?

다윗처럼 나의 단 한 가지 소원은 평생에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고백한다면, ‘시와 그림’의 찬양 <나의 소망>의 가사처럼 내가 걸어온 길에 주님의 흔적이 남고 주님이 보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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