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학교( 6.25 사변 후 많은 젊은이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게 되어  종전후에 초등학교 교사가 너무나 부족해 국가에서 급하게 고등학교 모든 과정을 국비로 교사 양성학교인 사범학교를 세웠다.) 졸업반이었던 겨울, 당시 먼저 교회에 출석하던 형님의 권유로 강릉 성결교회에 출석하여 학생들끼리 재미있게 지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담임목사님께서 일 년에 한 번 강원도 내 성결교회 지방 회의가 열리는데 거기에는 각 교회 기관장(남, 여 전도회, 청년회, 학생회 등)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당시 학생회장인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하시었다.

겨울 방학이고 졸업반이라서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모든 여비는 교회에서 부담한다고 하시니 선뜻 가겠다고 했다. 그해도 강원도는 무척 추웠었다. 강원도 안흥이라는 대관령을 지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많은 사람이 참석했다. 저녁 식사후  성결교회 원로이신 김응조 목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저녁 집회를 인도 하셨다. 처음 뵙는 목사님이신데 인상이 무섭게 생기셨었다고 기억된다. 첫 시간부터 말씀을 품어 내시는데 잠시도 목사님께서 눈을 뗄 수 없도록 하시었다. 낮에는 목사님들께서 회무를 진행하시고 저녁 시간 마다 연합 집회를 하셨다.

둘째 날 저녁 역시 김 목사님의 폭포수와 같고 화산 폭발 같이 강렬하고 힘 있는 말씀이 쏟아질 때 나도 모르게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지며 회개가 터졌다. 고등학생이고 학교에만 다녔던 학생이 무슨 그렇게 많은 죄가 있었는지 예배가 끝나도 일어서지 못하고 계속 울고 있으니 어느 젊은 전도사님이 오늘 철야 하실 분 남아 기도하자고 하셨다. 약 30~40명쯤 남아서 찬송하고 말씀 읽고 또 기도하고 이렇게 하며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5시가 되었다.

젊은 전도사님이 우리 그러지  말고 마을로 나가 전도하자고 제안하시니 모두가 “아멘” 하고 찬성하여 대관령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모두 길에 나섰다. 강원도의 새벽 추위는 엄청 추웠다. 당시 변변한 외투도 없었던 시절에 추위도 잊은 채 동네 골목길을 돌며 ”예수 믿으시오” 하고 소리 지르며 찬송도 우렁차게 부르며 동네를 돌고 있는 중에 갑자기 한 분이 나팔(trumpet) 불기 시작했는데 잘 못하신다. 

그래서 당시 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던 터라 그 나팔 내가 좀 불어도 좋겠느냐고 했더니 “그래 학생이 한번 불어 봐” 하며 내어 주셨다. 그래서 앞장서서 “ 내 주를 가까이…”를 나팔을 불며 다른 분들은 목청 높여 찬송하였다. 거의 어른 키만큼 높이 쌓인 눈 사이로 추위도 잊는 채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전도했다. 이것이 예수를 처음 영접하고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추억이다.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께 약속한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주님, 주님 앞에 설 그때까지 주일을 지키겠습니다”와 또 하나는 “수입이 있으면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을 드렸다. 그 약속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 좋으신 우리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남다른 많은 축복을 주셔서 오늘날까지  그 은혜 속에 선교사로 살고 있다.

* 편집자주 - 최상득 선교사는 1974년 미국에 이민하여 시카고 휄로쉽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 오케스트라 담당, 시무장로로 해외선교 위원장으로 섬기다가 2005년 목사 안수를 받고 SMF(Silver Mission Fellowship) 선교회에서 과테말라로 파송되었다. 2007년과 2013년, 선교지에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했으며, 음악 사역, 신학교 강의, 불우 어린이 돕기, SETECA 신학교 분교 설치 등 18년간 과테말라에서 사역하고 지난 2022년 12월, 시카고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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