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기르며 경험한 일입니다. 우리를 보수하기 위해 작업을 하던 중 울타리에 세워 놓았던 6피트 정도의 2x2각 목이 쓰러지면서 최근에 들어온 닭을 덮쳤습니다. 녀석은 동물적 감각으로 날쌔게 피하긴 했지만, 막대기는 꼬리 부분에 닿았고 닭은 푸드덕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저 멀리 도망쳤습니다. 큰일 날뻔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도망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해 헛웃음을 짓고는 나머지 작업을 끝냈습니다. 

이상을 발견한 것은 그다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먹이를 주러 가면 녀석이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다 손에 막대기 비슷한 것을 들고 있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줄행랑을 칩니다. 다른 녀석들은 가까이 와서 안기기까지 하는데 녀석은 좀처럼 경계를 풀지 않습니다. 그럴때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습니다. 공포심에 사로잡힌 녀석은 여차하면 우리 밖으로 날아가거나 아니면 먹이 그릇과 물통으로 돌진하며 먼지와 깃털을 날리곤 합니다. 

경험상 동물과의 교감, 관계 회복의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은 ‘강요하거나 서두르지 않음’입니다. 녀석에게 안정감을 되찾게 하고 나와도 좋은 관계를 맺게 하려면 섣부르게 다가가기 보다는 무심한 척 행동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먹이를 바닥에 뿌리고 멀찍이서 보고 있으면 엉거주춤하다가 기회를 보아 먹이를 먹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거리도 조금씩 좁혀집니다.

가까이 왔다고 해서 반갑다고 동작을 크게 하면 안 됩니다. 녀석이 좋아하는 것을 주되 생색내지 말고 내 할 일만 하고 있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요리조리 살피다가 나중에는 먼저 와서 내 몸을 건드리기까지 합니다. 그때에도 빨리 반응하면 안 됩니다. 손을 내밀더라도 부드럽게,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마음이 급하다고 또는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편하게 행동하면 녀석의 마음은 다시 얼어붙고 위치는 다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의 적용은 아들과의 갈등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이며 게다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의 관계 회복에도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사랑을 강요한다는 말처럼 모순적인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은 사랑이야말로 온유하고 오래 참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화해나 통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는 것이야 나의 일방적 행위로도 가능하지만, 화해는 상대방의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필요 때문에 또는 당위의 법칙 때문에 빨리 용서받고 빨리 화해하고 빨리 하나가 되고 싶겠지만, 상대에겐 상대의 입장이 있는 법입니다. 재촉해서 될 일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요? 하나님이 화해를 명령하고 계신다고요? 그 명령이 상대방에 대한 강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상대가 내 호의에 협력하지 않아서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반응하지 않는 상대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되도록 상황을 악화시켰던 자신을 반성할 일입니다. 그로 인해 결국 피해를 입는다면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큰 피해를 막고 싶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본인은 아무 대가도 치르려 하지 않으면서 예상되는 더 큰 피해를 모면하기 위하여 상대에게 화해를 강요한다면 상대의 마음은 더 얼어붙을 것이고, 이는 또 다른 폭력입니다. 화해를 위한 나의 적극적 노력이 상대의 마음과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2차, 3차의 가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갈등이 빨리 해결되면 좋겠지만, ‘올해 안에 반드시’라고 절대화하여 서두르거나 강요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곽성환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과 동 대학원, 풀러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바울사역원 PMI 원장이다. 유튜브로 매일 성경 묵상 프로그램 “일일텐”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