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1-11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계절이면 2천 년 전 어느 아침 갈릴리 호숫가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고깃배 한 척이 포구에 들어옵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의 표정은 피곤과 실망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밤새 고생했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빈 배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의 고기잡이를 마치고 닻을 내린 우리는 얼마나 소득이 있었습니까? 텅 비어 있는 배를 끌고 지친 모습으로 송구영신의 포구에 돌아온 것은 아닙니까?

한 해를 마감한 우리들의 배에는 삶의 만족과 보람과 성취의 물고기들이 황금빛 비늘을 번뜩이며 퍼덕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실의와 좌절과 회한으로 엉클어진 빈 그물만이 우리의 실패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까?

시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잠시 후 생기를 되찾고 희열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실패자 앞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러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기에 실망이 희망으로, 낙담이 기쁨으로, 실패자가 위대한 사도로 돌변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시몬에게 “네 배를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봉사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배가 텅 비었으니 마침 잘 됐소. 그 배, 내가 좀 씁시다.” 시몬의 구겨진 기분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투의 눈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주님의 요구에 응했습니다. 그랬더니 텅 빈 배가 쓸모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강단이 되었습니다. 실패자 시몬이 그리스도의 협력자가 된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한 시몬은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고기잡이 전문가였으나 고기잡이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의 목수 예수의 터무니없는 말 한마디를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따라보았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시몬은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고기잡이인가를 절감했습니다. 내 경험, 내 기술, 내 지식이 실은 별 볼 일 없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예수님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온갖 인생고에 시달리는 인간은 한없이 무력한 존재입니다. 원치 않는 전쟁을 일으키고 떼죽음을 자초합니다. 예고 없이 닥치는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은 한 마리 벌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과학도 의사도 어쩌지 못하는 불치의 병마가 오늘도 수많은 생명을 좀먹고 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원수인 죽음 앞에서 인간은 절체절명의 좌절과 절망을 맛봅니다.

그러나 이 절망 너머에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는 절망의 벽이 깨어져 나가고 가능성의 지평이 무한히 넓게 열리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소중한 것을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재물, 권세, 명예, 가정 등을 포기한 사람들은 칭송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버리는 것 자체가 기독교의 미덕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소극적으로 버리고 떠나고 피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의 현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뛰어들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셨을 뿐입니다. 그러자 시몬은 스스로 결단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가 이제부터 얻을 것이 지금 버리는 것보다 몇 배나 더, 가치 있는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했던 것입니다.

지난 한 해를 마감한 우리는 지난 1년간 갈릴리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얻어 보겠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끝내 텅 빈 배를 포구에 대고 허탈한 모습으로 내려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앞에 오십니다. “그 배를 좀 쓰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나를 따르라.”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출발하는 새해의 인생 항해는 그 성패가 판가름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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