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2016년까지 와싱톤한인교회를 섬겨 오면서 연합감리교회의 목회자 학교와 미주목회멘토링 사역원 원장으로서 교회와 사회를 위해 노력해 오던 중, 2016년 7월부터 와싱톤한인교회의 지교회로 시작한 와싱톤사귐의교회를 맡아 섬기고 계시는 김영봉 목사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사귐의 기도』,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의 저자로 잘 알려진 목사님은 과거 30대 후반에 영적인 침체와 어둠을 경험했을때 시편의 기도를 통해서 도움을 받았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최근 『시편의 사람』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교회가 교회 됨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어떤 목회를 추구하셨는지, 그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크리스찬저널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워싱턴 DC와 가까운 북버지니아에서 워싱턴사귐의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김영봉 목사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사역들을 돌아봤을 때,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목회하시면서 하나님의 열매가 어떻게 맺게 되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마음에 있는 확신 중의 하나가 교회 목회로 부름을 받았다고 늘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 자신을 훈련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신학교 교수로 부름을 받게 됐지요. 그런데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교수 되기 위해서 신학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목회를 하기 위해서 신학 공부를 했고 목회 현장으로 나갈 거다’라고 늘 이야기를 했었는데, 10년 신학교 교수 사역을 마치고 목회의 현장으로 오게 됐죠.

한 목회자로서 혹은 신학자로서 하나님 나라와 이 땅에 있는 교계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은 본질에 가까운 교회를 이 땅에 가꾸어 보는 것. 그것이 저의 큰 소망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구체적인 교회를 하나 가꾸는 것이 훌륭한 신학 서적 몇 권 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여태까지 20년 목회를 해 오고 있습니다. 그 열매가 바라는 만큼 되었느냐, 그렇게 이 땅에 어떤 결과물을 놓고 내가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이만하면 됐다고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좀 더 교회다워지려고 애를 쓰고, 그런 과정에 있는 것이 열매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이런 결과도 맺고, 저런 결과도 냈다는 것보다는 지금도 여전히 교우들과 함께 좀 더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힘쓰고 있다. 그것이 열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워싱턴사귐의교회를 개척하셨는데, 개척 과정과 그리고 목사님께서 기도하고 있는 것들이 잘 뿌리가 내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워싱턴 DC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951년 전쟁 당시 개척된 교회인 워싱턴한인교회에 지난 2005년에 부임했는데 교회 건물을 더 늘릴 수는 없고 교인들 수는 많고 해서 멀지 않은 곳에 지난 2007년 건강한 교회, 지교회를 세워서 시작을 했습니다.

원래 목표는 담당 목사를 세우고 또 하나의 건강한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성장하다가 어려움이 있고 성장하다가 또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9년 뒤에 본 교회에서 실패를 선언하고 이 교회를 문 닫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분별하는 중에 지난 9년 동안 많은 교인들이 기도와 눈물로 헌신했고, 저도 많은 노력을 했는데 문을 닫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함께 해온 교인들에게 알아서 흩어지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저를 파송해달라 부탁을 했고, 그렇게 해서 지교회 담임으로 나가서 지금까지 8년 동안 섬기고 있습니다. 

개척하자마자 10주 동안 교회란 무엇인가 성경 공부를 하면서 직분 제도도 하지 않기로 하고, 교회 시스템을 좀 더 교회다운 것으로 바꾸면서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목회자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딱 그렇게 흘러갈 수는 없고, 목사라고 모두 옳다고도 할 수 없고, 교회의 주인인 성령님의 인도 대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야 하므로 교회 됨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교인 수가 늘어났다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고, 교회 됨에 가치를 두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우리 몸처럼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여전히 있어서 완전할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기도하고 노력하고 꿈꾸는 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을 소개하면, 책 『사귐의 기도』를 빼 놓을 수 없는데요. 교회 이름도 사귐의 교회라서 사귐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저는 사귐이라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고 신앙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해요. 일반인들에게는 남녀 간에 가벼운 사귐으로 이해를 하는데, 사귐은 신약 성경에서 “코이노니아”(koinonia)로 운명을 같이 하는 깊은 인격적인 사귐을 말합니다. 사랑이 인간됨의 본질이라고 하면, 인간은 누군가와 같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사귐을 인간 존재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일서 1장 3~4절을 보면, 요한 사도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우리와 사귐이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어울려서 서로 깊은 연대감 속에서 살아가는 이 삶의 방식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그런 존재 방식으로 지으셨고, 우리가 죄를 지음으로써 잃어버린 것도 인격적인 사귐입니다. 

그래서 사귐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고, 그런 인격적인 사귐을 회복할 때 인간됨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건, 사귐 속에서 있고, 기도의 핵심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초점인 것이고, 교회의 본질도 성도 간의 깊은 사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귐을 제 삶과 신앙의 키워드로 생각하는데,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보다는 성서 신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영성 가운데서도 교회와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도 내고 계시는데요. 믿음의 실천과 영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에베소서 4장 6절에 보면 바울 사도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신데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계시고 모든 것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 안에도 계시고,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도 계시고, 이것을 초월해서도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그렇게 역사하신다면, 우리는 그 각각의 영역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힘써야 하는데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영성입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그래서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 영성이고, 그 하나님이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일하십니다. 우리의 조직, 우리의 교회, 우리가 사는 사회, 국가, 이 모든 존재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내가 참여해서 일하는 것, 그것은 영성 생활과 똑같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성 생활과 내 사회 생활이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만일 그게 분리되었다면, 그 영성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내가 매일 기도하며, 묵상하며, 내가 사귀고 있는 그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서도 역사하고 활동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일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이 완성되는 것은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까지여서 저는 이 세가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영성 생활과 사회적 실천은 함께 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장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저를 포함해서 현재 목회자들이 교회 혹은 목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은 지난 70, 80년대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교회, 그 목회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기독교 역사상 전에 없던 변화입니다. 

도시화되고, 도시화 된 상황 속에서 교회가 거대 교회가 되고, 교회를 개척 할 때마다 교회가 부흥하고 대형 교회 되고, 이것은 과거에는 없던 일이에요. 그런데 지금 목회자들은 다 그런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거에요. 내가 목회자로서 성공하는 것은 큰 교회를 이루고 부흥을 이루고 이런 거로 생각하는데, 저는 바울을 생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 로마에 있던 기독교인들, 고린도에 있던 기독교인들은 0.001%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목회와 교회의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형 교회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비기독교적인 세계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박해를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의 패러다임입니다. 

그러므로 이 상황은 절대로 이상한 상황이 아니라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런 상황이야말로 교회가 상업주의적인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교회 됨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신앙과 교회 본질에 가까워지는 노력이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사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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