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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주님을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는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를 경험적으로 알아가며,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임다니엘 목사(크리스찬저널 편집부장)

고사성어에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이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또, “양약고구(良藥苦口)”라는 말도 있다. 명약이 입에 쓰지만 몸에는 좋다는 말이다. 몸을 위해선 입에 단것만 먹어선 안 되고 쓴 것도 뱉지 말고 먹어야 한다. 우리 몸뿐만이 아니라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부활과 영광이다. 하지만, 그 앞서 고난과 죽음을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전했다(딤후 1:8).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러야 한다면, 고난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첫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의미한다. 이사야 53장에는 고난 당하고 학대받는 종에 대한 메시아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그릇 행하여 제 길로 가는 양 같아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한다(사 53:5-6).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과 슬픔과 질병의 고통을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하여 담당케 하셨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배반한 우리를 대신해 예수님은 극한의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다.

그분의 고난과 죽음은 우리를 구속하여 부활과 영광에 이르게 하기에 완전하고 충분한 대속의 사역이었다. 그런데 골로새서 1:24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말한다. 마치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불충분해서 더 받아야 할 게 남은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받아야 하는 고난을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필연적으로 받으시고, 또한 몸 된 지체가 받게 되는 고난을 말한다. 이를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 고난을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고 말씀했듯이, 피상적인 고난이 아니라 실제로 받게 되는 고난으로 묘사했다. 그리스도로 인해 받게 되는 손해와 비방, 조롱, 폭력, 감금 등 육체에 실제로 가해지는 고난이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 사울이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갔다.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그가 땅에 엎어졌다. 이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렸다. 사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이 박해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사울이 자신을 박해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박해받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었다.

휘튼칼리지 대학교회 담임 켄트 휴즈 목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단순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에 참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신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내고(롬 6:5, 6; 고전 15:31; 갈 2:20), 그리스도의 새로운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함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롬 8:17-18; 고후 4:7-11).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은 부활하신 능력의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에서 “알고자 하여”의 헬라어 ‘그노나이’는 지적 지식 뿐 아니라 경험적 지식을 말한다. 또한 과거나 현재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알고, 또한 부활하여 그 능력 가운데 있으신 주님을 깨달아 알아가는 것이다. 그 분과 연합하여 부활하셔서 믿는 자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여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한다(롬 6: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로서만 아는 것이 아닌, 부활하시어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여 궁극적으로는 부활에 이르기를 원했다(빌 3:11).

셋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영광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고난을 받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없는 위로와 은혜 또한 받게 된다. 고린도후서 1:5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의 말씀처럼, 주님은 고난에 견줄 수 없는 위로를 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누구보다 잘 아셔서 외면치 않으시고 우리를 도우신다(히 2:18).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게 되는 고난은 영원히 받게 될 영광에 비하면, 아주 순간의 찰나이며 비교할 수 없이 미약한 것이다(롬 8:18). 따라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현재의 고난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 잠깐의 고난으로 여겨 이를 통해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는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고 인내해야 한다(벧전 5:10).

인간은 보통 살면서 겪게 되는 고난을 덜고자 무언인가를 의지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주님을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는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를 경험적으로 알아가며,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오픈도어선교회(Open Doors International)의「2023 세계 기독교 감시 목록(2023 World Watch List)」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3억 6천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신앙 때문에 심한 박해와 차별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22년에 5,621명이 순교 당하고, 2,110교회가 공격당했으며, 4,542명이 감옥에 갇혔다. 하루에 15.4명이 순교 당하는 것으로 통계 수치가 말하고 있지만, 실제 알려지지 않는 박해를 포함하면 5분마다 1명이 순교 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의 돕는 ‘순교자의소리(The Voice of the Martyrs)’ 선교 단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과 그분의 대명령 이행을 장려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성경적 신앙을 갖도록 격려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성경 말씀처럼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 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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