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필 목사(사랑의 교회, CO)

소 명

윌리엄슨(Alexander Williamson)은 1829년 12월 5일스코틀랜드 페어커크(Fairkirk)에서 태어났다. 그는 글래스고우대학을 1850년에 졸업하고 1855년 초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855년 4월, 이사벨라(Bougall Isabella)와 결혼하고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 소속 선교사로 1855년 9월, 상해에 도착하여 존 그리피스(John Griffith ) 등과 같이 상해에서 활동하다가 과로로 인해 2년 뒤에 귀국했다.
1863년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The 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의 대표자로 다시 중국에 파송되어 산동성 지푸에 자리잡고 내륙지방의 탐색과 개척 전도를 시작했다. 윌리엄슨은 1864년부터 1869년까지 북중국, 만주, 동몽고 지방을 여행하며 성경을 전했다.
그는 1870년 런던에서 <북중국, 만주, 동몽고 여행기 및 한국 소개(Journeys in North China ; Manchuria and Eastern Mongolia : with some accounts of Korea)>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은 한국의 인문과 문화를 유럽인에게 알린 귀중한 문헌이다.

한국인 접촉

윌리엄슨은 1866년 4월 요동지방의 잉체코(영역, Ying-tze-kow)에서 어떤 친구의 소개로 무역을 목적으로 산동에 건너온 한국 상인 2명을 만났다. 그들은 발각되면 본국으로 가서 죽임을 당할 각오를 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윌리엄슨의 집에서 몇 시간을 같이 지냈다. 그들은 묵주, 십자고상 등 천주교인임을 표시하는 소지품을 옷 속에 숨기고 있었다. 대화중에 그들은 구주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신 것을 믿으며 매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좋은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과를 들기 전에 기도를 청하니 한국어로 기도를 드렸다. 그 중에 젊은 사람은 신구약 성경을 자기 교우들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교리문답서도 보여 주었다고 하는데, 윌리엄슨은 그들과의 만남을 매우 기뻐하였다.
그후 4월 19일에는 천장대(Tien-chwang-tai)에서 귀국도상의 한국 동지사(冬至使) 이풍익(李豊翼) 일행을 만났으며,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지식에 놀랐다고 한다. 만다린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동지사는 북경에서 여러 선교사들을 만났으며, 런던선교회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윌리엄슨이 신기하게 생각한 것이 또 있다. 그들 중에 두세 사람은 천주교인으로서 북경에 있는 신부들에 관해서도 겁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지사 일행은 서교(西敎)에 관한 상당한 분량의 책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교리에 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토마스 선교사가 1865년 9월 김자평의 배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으나 불행히도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고 북경으로 돌아가던 길에 윌리엄슨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윌리엄슨은 토마스에게 여러 권의 한문 성경책을 넘겨 주면서 한국으로 갈 것을 종용했던 사람이다.
윌리엄슨은 한국으로 떠난 토마스 선교사의 생사도 알아볼 겸 한국 사정을 알아 보려고 한만 국경에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작정하고 1867년 9월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는 봉황산 밑 고려문 세관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세관을 통과하는 한국 상인을 만나서 한국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한문성경을 나누어 주면서 수집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였다.

위대한 가능성의 나라

윌리엄슨은 한국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영특하고 성품은 우아하며 영민한 생각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한국의 지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토지는 비옥한 천혜의 나라라고 하면서,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이 나라에 없는 그것은 기독교와 그 문명의 박차와 지도라고 했다.
윌리엄슨 선교사는 여러 모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는 훗날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와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ire) 선교사의 한국인 접촉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윌리엄슨은 1890년 8월 28일 중국 지푸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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