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원필 목사(사랑의 교회, CO)

셔먼호를 타고(2)

셔먼호는 한국에서 필요로 할 만한 상품을 많이 싣고 통상의 가능성 유무를 타진하기 위하여 파견된 무장상선이었다. 토마스 목사를 포함하여 백인 5명, 중국인과 말레이지아인 19명 등 모두 24명을 태운 셔먼호는 1866년 8월 9일 중국 지푸를 떠나 8월 20일 대동강 하류 강서군 초리면 포리(浦里)에 닻을 내렸다.
대동강 하류에서 셔먼호를 발견한 지방 관리들은 있는 힘을 다해 억류시키려 들었으나, 그 배는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평양성 바로 아래?있는 만경대에까지 이르렀다.  평양 성내는 삽시간에 발칵 뒤집히고, 사람들은 겁에 질려 아우성을 치면서 대성산 쪽으로 많이 피신하였다.
이때 평안감사 박규수는 전군 출동 태세를 명하고 중군(中軍)대장 이현익(李玄益)에게 외국배가 내향한 목적과 동태를 살피라고 지시했다. 이현익은 문정(聞情)을 위해 부하 장졸을 몇 명 거느리고 작은 배를 저어 셔먼호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이 배는 벌써 양각도 위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중군이 “이 어떤 사람들이냐?”라고 문정하자, 그들 중에서 한국어를 조금 아는 사람이 “우리는 결코 나쁜 마음으로 온 것이 아니라 예수교를 전하는 것이 그 첫째 목적이요, 좋은 물건들을 교환하자는 것이 그 둘째 목적이요, 한국의 산천과 고도(古都)의 명승을 구경하려는 것이 그 셋째 목적입니다.”라고 그들이 한국에 온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에  이현익은 “한국은 국가정책에 따라 서양사람들과 거래하지 않을 뿐더러 예수교는 나라에서 철저히 금하고 있으니 어서 순순히 돌아가 주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셔먼호 선장은 노발대발하여 중군과 그 일행을 선실에 감금하고, 중군의 신인(信印)을 빼앗아 감추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중군이 돌아오지 않아 평양 성내에선 큰 물의와 소동이 일어났다. 서양 선원들이 중군을 어떻게 하려는지 알 수 없어 어서 속히 그를 그 배에서 구출해내야 한다고 부하장졸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아우성을 쳤다.
평안감사 박규수는 사태의 급박함을 느끼고 사방에 원군을 청했다. 총 잘 쏘기로 유명한 강계(江界) 포수들도 모여들었고, 서울에서도 응원군이 내려왔다. 그러나 중군을 구원해 낼 만한 용감한 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중군의 구출은 막연하였다.

이때 박춘권(朴春權)이 “이 몸이 중군님을 구출해내겠습니다.”라고 서윤(庶尹) 신태정(申泰鼎)에게 아뢰었다. 서윤은 박춘권의 담대함과 그 결의의 굳셈을 보고 허락했다.
박춘권은 단신으로 배를 저어 셔먼호를 향해 갔다. 선상에 있던 토마스 목사에게 그는 중군이 자기 아버지라고 속였다. 그리하여 그는 토마스 목사의 호의로 무난히 배에 올랐다. 박춘권은 중군의 아들 행세를 한 덕분에 중군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중군님, 제가 배 한 척을 가지고 왔습니다. 조금 있다가 저놈들이 잠잘 때 중군님을 껴안고 뛰어내려 배를 저어 탈출하렵니다. 다른 분들은 그냥 뛰어내려 배에 붙어서 나가도록 합시다.”라고 박춘권은 자기의 구출 계획을 중군 이현익에게 아뢰었다.
박춘권의 뜻은 장하고 갸륵하였고, 그 방법은 기묘한 것이었으나, 이미 신인을 빼앗겼으므로 살아 돌아간다 해도 중직(重職)을 소홀히 한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기에 중군은 탈출을 단념하였다. 박춘권도 단신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다시 육지로 돌아가 다른 방도를 구하기로 한 그는 이튿날 토마스 목사에게 육지로 보내달라고 간청하였다. 토마스 목사는 소원대로 그를 돌려보내 주었다.
박춘권은 육지에 나오자마자 곧 서윤에게 배 안의 실정과 중군의 안부를 전하였다. 얼마 후 박춘권은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셔먼호에 들어가겠다고 청했다. 단신으로는 신인을 되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용감한 사졸 몇 사람의 힘을 빌려 중군과 신인을 모두 되찾을 참이었다. 그 중에는 그의 조카 박치영도 끼여 있었다.
박춘권 일행은 그 이튿날 다시 셔먼호에 접근했다. 그는 커다란 종이뭉치 하나를 갑판 위로 던졌다. 선원들의 시선과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려 놓고 중군을 구출해 내려는 계책이었다. 토마스 목사와 선원들이 혹시 한국 정부로부터 보내온 중요한 문서가 아닌가 하여 그것을 펴보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중군님! 지금이 기회입니다. 어서 속히 뛰어 내리십시오.”라고 박춘권이 소리쳤다.
중군은 부하들과 함께 강물에 뛰어내렸다. 중군이 물 속으로 뛰어내리자 박춘권이 날쌔게 중군을 껴안고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 언덕을 향해 배를 저었다.
중군과 그의 일행이 탈출한 것을 뒤늦게 알아챈 셔먼호의 선원들은 강을 향하여 총을 쏘아댔다.

한편 중군 이현익을 옆에 끼고 강물을 헤엄쳐 나와 비호(飛虎)처럼 강 언덕에 올라서는 박춘권을 보고 수천 군중이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이로써 박춘권은 “중군을 옆에 끼고 대동강을 건너뛴 장사(挾中軍而超人大同江)”라는 칭찬을 아낌없이 받았다. 박춘권의 중군 구출을 계기로 피아간에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셔먼호에는 대포 2문이 있었는데, 그 위력이 어찌나 세었던지 한 번 발포하자 성문이 송두리째 빠지고 수 명의 군사가 한꺼번에 쓰러졌다.
악에 받친 우리 군사들이 총을 쏘고, 활을 쏘고, 돌을 던졌으나, 전체가 쇠붙이로 된 셔먼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안 감사는 선박과 선원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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