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열전 (9)

길원필 목사(사랑의 교회, CO)

민영익 일행의 미국 방문

한미수호조약은 1866년 대동강에서 일어났던 미국 상선 셔먼호 사건 이후 중국에 있던 미국인들에 의해 그 체결의 필요성이 여론화되기 시작했으며, 1874년부터 1882년 사이에 캘리포니아 주 출신의 상원의원인 서전트( Sargent)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1880년 미국의 슈펠트(R. W. Shufeldt) 제독이 한미우호조약 체결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이번에는 슈펠트가 미국 전권대사의 자격으로 미군함을 이끌고 제물포에 나타났다.
당시 중국의 외교정책 수립자였던 이홍장의 주선으로 1882년 5월 2일 조선 정부대표 신헌(申櫶)과 미국 대표 슈펠트 제독이 제물포에서 한미수호조약서에 서명함으로써 역사적인 조약이 체결되었다. 1883년 4월 미국은 정동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초대주한공사로 푸트(L. H. Foote)를 파송하였다.
고종은 미국 사신의 신임장을 받고, 그해 7월 26일 답례사절단(전권대사 민영익, 부사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 수행원 유길준, 고영철, 변수 현광택, 최경식 등)을 미국에 파견하기에 이르러, 이들은 푸트 공사가 타고 온 미국 군함 모노카시호를 타고 제물포에서 출항, 태평양을 건너 9월 6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대륙횡단열차에서

중국인 오복당(吳福堂)과 일본인 미야오까가 통역으로, 그리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저자 로엘이 비서로 일행에 합류했다. 이들은 기차를 타고 광대한 미 대륙을 횡단하여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을 향하여 장거리 여행을 하였다. 이때 우연히 감리교 목사이며 볼티모어 가우처 대학의 학장이자 일본 청산학원의 창립자인 가우처 박사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동양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가우처 박사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옷차림의 한국사절단에 호기심을 느껴 통역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시도하였다. 가우처 박사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나는 코리아의 긴 역사와 깊은 사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일본과는 자주 왕래가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오고감이 국제정치적 교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우호관계로 서로를 이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교류를...”
“보다 근본적인 인간 관계라는 것은 통상을 통한 어떤 것입니까? 문화 교류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민간인끼리 오고가는 그런 것을 뜻하는 것입니까?”
민영익은 가우처 박사의 의중을 떠보았다. 가우처는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네, 말하자면 그런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짓고, 의사가 병을 고치고, 함께 생활하는 그 일을 인간의 양심 이상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이 코리아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열차의 창 밖으로 미 대륙의 광활한 대지가 밤낮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코리아를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일찌기 들어본 적 없는 민영익에게 그 말은 여운으로 남았다.
기차 여행이 끝나고 가우처 박사와 헤어졌으나 가우처에게서 그윽하게 풍기던 인품의 향기는 민영익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학자이며 대학총장이고 목사인 가우처가 ‘그토록 열심히 코리아에 주고 싶어하던 것은 무엇일까?’
뉴욕에서 머물고 있었던 민영익은 또 한 사람의 독특한 미국인을 만났다. 동경대의 동양학 교수로 봉직했던 한국통 그리피스(W. E. Griffis)였다. 그리피스 교수는 일본에 머물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한국을 연구한 미국인이었다. 그리피스 교수는 민영익을 만나 화란인 하멜(H. Hamel)이나 한국의 장래, 그리고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얼크러져 있는 갖가지 세력들과 뿔뿔이 흩어진 민심을 한데 묶는 길은 하나님의 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평화스럽게 됩니다.”
그리피스 교수의 결론에 이르는 길은 가우처 목사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백성이 하나가 되어 풍성스럽게 된다는 거였다. 하나님의 법으로 묶으면 가능하다는 거였다.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우리나라에서도 부르는 그 하나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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