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은 구약의 오순절에 근거한다. 오순절은 유월절의 제2일(니산월의 16일)부터 세어 7주 후, 즉 50일째(시완월의 6월)에 지켜졌고 칠칠절 혹은 맥추절, 초실절로 불리웠다. 미슈나 및 탈무드에서는 이 절기를 아체레스(atseres, 종료 termination이라는 뜻)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50일간에 걸치는  유월절 기간이 이 절기(축일)로서 끝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이 날을 시내산에서 율법 받은 날로 지켰다. 동시에 그들은 유월절을 유대국민의 탄생, 칠칠절을 그들 종교의 탄생일로 중시하고 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며 자유도 주권도 없이 되는 대로 살던 인생들이 하나의 국민으로 태어나고 온 국민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통일된 국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백성 가운데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는 무리가 발생하면서 이방 신상을 섬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와 저주를 자초하며 후회와 탄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에 선지자들은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위로도 책망도 쉬지 아니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했다.

결국 이들은 “공의를 인진(쓴 쑥)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암 5:7)들이 되어 말라기 선지자의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6)라는 저주 어린 경고로 구약을 끝맺음한다. 이후로 페르시아의 200년 동안의 지배를 비롯해 헬라, 하스모나안, 로마 등의 통치를 받으며 2천 년 가까이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전 세계를 유리방황해야 했다. 이러한 방황은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레 26:33)라는 말씀에 기인한다.

400여 년을 흑암에서 방황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새로운 통일을 경험한다. 비록 일시적이고 제한된 공간이기는 했지만 동서사방에서 몰려온 인종들이 상호 다른 사상과 언어를 사용했음에도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는도다”(행 2:11) 했던 사건은 성령 안에서 새로운 통일과 연합을 성취했던 놀랍고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한반도는 “끓는 가마”(렘 1:13)처럼 요동을 치고 있다. 북쪽은 대량 살상 무기로 남한을 비롯하여 전 세계를 위협하는 망나니짓을 하는 한편 남쪽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싸움으로 막가는 정치판을 그리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서로 알아듣지 못해 분쟁과 아귀다툼을 일삼고 서로 다른 사상과 생각은 극과 극으로 나뉘어 어느 한 쪽이 부서지고 쓰러지지 아니하면 끝장나지 아니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므로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이미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형사사건의 피의자이며, 스스로 법적인 방어를 포기하고 자살을 선택했으나 언론들이 지나치게 미화하므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지적대로 “언론이 자살한 노 전 대통령을 성자로 만들며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회복에 그 의미가 있다. 극과 극의 상황에도 하나 되는 역사와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인간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생명을 소홀히 하거나 자학할 수 없다. 남의 생명을 경시하거나 혹은 자살하는 것은 회복되지 못하고 버림받은 인간들의 무책임하고 비열한 행동으로 창조주의 권위와 은총을 저버리는 배신의 행위일 뿐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반도의 위기 모면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회복에 있다. “마른 뼈들”(겔 37:1-6)이 생기를 얻어 회복한 것처럼 부딪쳐 부서지기 전에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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