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한국 사회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만 하더라도 뇌물 착취 혐의로 온통 비난의 소리가 홍수를 이루었으나 막상 자살을 한 후에는 일약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생존시 그와 그의 측근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던 것과는 달리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성자로 변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그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대부분의 언론에 미화된 그의 자살 원인을 검찰의 모진 수사와 현 정권의 정치 보복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자, 최고 영도자였던 그가 정정당당했더라면 왜 보다 더 당당하고 용감하지 못했을까. 인터넷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 공감한다. “검찰이 그럴수록 왜 당당히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워라, 구속하라, 박연차와 대질하게 하라.’고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았습니까? 그래도 미진(未盡)하면 법정 투쟁도 불사(不辭)했어야 합니다. 차라리 검찰이 구속했더라면 삶의 의지, 투쟁 의지가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검찰의 비열한 망신 주기 작태를 타파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서민들이 검찰의 그런 짓거리의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변호사이고 대통령을 지낸 당신이 나서서 치유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일생을 관통(貫通)한 그 투지, 그 강인한 정신이 왜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았습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 자주 찾아 갔던 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왜 투쟁의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습니까?”(2009년 프리랜서 변재환씨 글에서)

검찰의 수사나 현 정권의 보복이 아무리 괴로웠더라도, 처참하고 극단적인 행동인 자살로 인해 그는 영웅이나 열사가 아닌, 용납될 수 없는 비겁했던 대통령으로 후대에 남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승부수를 기대했다면 더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죽음 전보다 죽음 후에 수많은 시민과 언론 및 단체들에 의해 미화되고 있다. 오죽하면 김동길 교수가 “언론들이 그를 성자로 만들었다”고 비꼬았을까. 게시판의 한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은 집권 기간 동안 그 자신이 숱하게 반복해 온 ‘벼랑 끝 승부수’의 대미로 마무리한 것이다.

과연 ‘승부사 노무현’ 다운 선택이다. 그 결과 노무현 집권 5년의 실정은 모두 미화되고, 노무현 가족의 부정한 돈 받기는 억울함으로 왜곡됐다. 그의 영결식에서 한승수 총리까지도 조사(弔辭)에서 ‘고인께서 그토록 열망하던 화합과 통합을 반드시 실현하고 세계 속에 품격 있는 선진일류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보수언론들도 노 씨의 유훈임을 강조하며 너도나도 화합과 통합을 주장했다. 승부사 노무현이 아니고서 과연 어느 누가 이런 역전의 승부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자살한 그는 승부사라기보다는 철저한 패배자인 동시에 비겁한 선택자였을 뿐이다.

자살은 일반인에게도 ‘유치한 저항’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성경에 대표적인 두 자살자가 있다. 그 중 하나는 구약의 인물로 이스라엘 초대 왕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왕위에 있는 동안 온갖 탐욕과 착취, 시기, 아집 등으로 백성을 괴롭히고 후계자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쉬지 아니했던 패악한 인간이었다. 그의 자살은 그의 삶을 반영한 것이었다. 다른 한 명은 신약의 가룟 유다이다. 자신을 구원하고 가르친 선생을 팔아넘긴 자로 배은망덕한 자의 표본이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목을 매 자살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막 14:21)한 불행한 자로 치욕적인 그의 죽음은 자자손손 제 스승을 판 자였다는 오명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자살은 지위나 권세, 빈부를 막론하고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자살은 유치한 저항일 뿐’이라는 지적이 매우 적절하다. 따라서 노 씨의 자살도 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자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고 그의 은총을 배역하는 중죄임을 기억해야 한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