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려고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마음이 산란한 딸을 붙잡고 꼭 결혼해야 하겠느냐고 묻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일까? 결혼하지 말고 나와 함께 살자고 하면서 네 평생 행복하게 해줄 테니 남편하고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조르는 부모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또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으로 놀러 온 딸에게 남편 걱정 말고 계속 여기 머물러 있으라고 붙잡는 부모에게 무엇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또 이와는 반대로 아들이 다 커서 장가 들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점심, 저녁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챙겨서 먹여 주어야 하며 심지어 양말, 속옷 등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일일이 간수해 주며 아들을 떠받드는 어머니들이 있음을 다반사로 보게 된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챙겨주다 보니 그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간단한 일조차 엄마를 찾으며 응석(?)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스스로 못하고, 자고 일어나는 방조차 치우지 못한다. 자기 혼자 세수하고 샤워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지경이다. 이런 아들이 장가를 가려면 그 부모는 자신들이 하던 모든 것들을 며느리가 해 주어야 하므로 절대 순종하고 자기 아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그런 며느릿감을 구하기 위해 고생이 말이 아닌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다 보니 자식의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부모의 역할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금지옥엽처럼 기른 자식이 혹여라도 배우자 잘못 만나서 고생이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자식의 결혼이 아니라 아예 부모가 직접 결혼 당사자가 되어서 결혼 상대를 고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학벌은 이 정도가 되어야 하고, 직업은 적어도 이러저러한 수준이 되어야 하며, 또 외모도 빼놓을 수 없으며, 집안과 부모의 직업도 당연히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절차가 된다.

실제로 그런 부모가 있을까 싶지만 요즘 들어서 이렇게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아끼고 못 놓는 부모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 물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녀에게 모든 것을 해주면서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성인이 되어도, 아니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도 아직 내 품의 자신인 양 미련(?)을 못 버리는 부모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말이다.

또 자식에게 들인 공이 워낙이 많은지라 자식에 대한 기대와 미련도 이에 못지 않다. 그래서 자식의 나이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어도, 아니 그 이상이 되어도 아직도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자식으로 생각하고 작은 일에서 큰 일까지 이래라 저래라 간섭과 통제와 참견을 쉬지 않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부모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식과 말다툼을 하게 되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너무나 많이 본다.

부모들의 입장은 한 결 같다. 자식을 위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저희들 좋으라고 하는 것이지 나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처럼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어째서 부모의 생각과 의견이 다 맞고 자녀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 틀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 말은 다시 말해 부모들이 자신의 생각으로 자녀들을 조종하고 다룬다는 말이다. 말로는 자식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철학으로 끌어간다. 그 모든 것들은 부모에게는 적합하고 맞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자식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설령 맞는다 하더라도 그 모든 일의 책임과 결정은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어려서부터 나이가 들 때까지 한 가지도 맡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부모가 나서서 결정해 주어야 하는가?  자녀들이 결정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독립해 나가는 것을 막고 바로 일어서지 못하도록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를 정하는 것도,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또 직업을 갖는 것조차 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다.

부모의 압력에 할 수 없이 대학과 전공을 자기의 소신과는 관계없이 정했다가 결국 나이 들어서 고생하고 다시 진로를 바꾸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배우자 결정도 부모의 마음에 들어야 하며 자식을 낳는 것 또한 자신들의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이게 무슨 조선시대의 이야기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결혼하고 1-2년 안에 자녀를 낳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성화이다. 또 몇 명을 낳는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많으면 많다고, 적으면 적다고, 자녀 터울은 이 정도가 좋다고... 정말 미국 사람들이 보면 기절을 할 노릇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식을 낳으면 내 것이 되는 것이고 결혼을 해서 아내나 남편이 생기면 내 아내, 내 남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내 배우자가 내 소유가 되는 것일까? 내가 낳았다고 해서 자식이 내 소유가 되냐는 말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데 있는 것이다.

내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런 마음과 생각이 행동으로 나와서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게 되며, 결국 생각이 틀릴 때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화가 나게 되어 나중에는 갈등과 싸움이 되는 것이다. 상대를 내 것으로, 내 소유로 생각하는 것에서 이런 싸움과 갈등이 생긴다면 결국 문제는 자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을 내 소유로 생각하고 있는 부모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소유개념은 절대로 성경적이지 않다. 이것은 단지 문화적인 전통일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고정된 자녀에 대한 소유개념 때문에 우리 가정에서 심각한 갈등과 충돌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 자녀들이 우리 소유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또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것은 유교적인 절대순종을 의미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주 안에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서로 섬기며 존중하라는 말씀이다. 주 안에서 사랑과 관심과 존경이 있을 때 그 가정에는 행복이 생기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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