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미주성결대 명예총장)

나 예수는 이 마을에 머문다는 걸 소문내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습니다. 조용한 시간을 갖고 기도해야만 할 급박한 일들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짱 헛일이었습니다. 어떻게들 알았는지 찾아오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방도 부탁해 왔습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목사를 꼭 만나달라는 어떤 사모의 요청은 너무나 애절했습니다. 남편 목사의 외고집을 꺾어 달라는 절실한 호소입니다.
“벌써 다섯 번이나 교회에서 쫓겨났어요. 그런데 여섯 번째 교회도 자리를 비워 달라고 아우성이예요.”
울면서 그런 상담을 해왔습니다. 생활도 막막하고 두 아이의 교육도 엉망진창이 되었답니다. 가족의 그런 고통에도 동정이 갔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반석 위에 짓는 목회자가 되도록 지도하는 것이 더 급박했습니다. 나 예수가 생살을 찢고 뜨거운 피를 흘려 세운 것이 교회 아닙니까?
“저는 데모세대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데모 제일 잘하기로 이름난 그 신학대학원 졸업생입니다. 신군부에 끌려가서 죽도록 매도 맞고 고문도 당했습니다. 허지만 결코 변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처럼 목숨 걸고 정의를 외치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말하자면 대쪽목회만 하겠다 이겁니다.”
까페에서 만난 그에게는 대쪽 같은 기개가 살아 있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더 들었습니다.
“큰 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에는 담임목사를 향하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대들었습니다. 고액헌금자들과만 놀아나고 부목사는 사뭇 노예취급을 했어요. 그 다음부터 부목 자리가 꽉 막혔지요. 울며 겨자 먹기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불만세력 몇 가족이 따라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권사와 장로 되려고 아귀다툼을 해요. ‘화 있을진저’ 하고 심판과 저주를 퍼 부었지요. 그러니까 저희들끼리 야합해서 나더러 그만 두라는 거였어요.”
그렇게 해서 교회 쫓겨난 기록으로 보면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며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기가 쭉 빠진 씁쓰레한 웃음이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높은 산을 깎아서 골짜기를 메워 평탄한 길을 만드셨네요. 공의의 목회를 하시느라고 십자가를 지셨네요.”
“역시 저를 제일 잘 이해하여 주시는군요. 대쪽목회에는 남들이 모르는 쾌감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를 만드신 창조주께서는 무화과나무도 만드셨지요. 그건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지는 않지만 잎사귀가 넓어 사람들의 허물을 넉넉하게 덮어 줍니다. 대쪽 목회를 한 단계 높여 무화과나무 목회를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용서와 사랑이 있는 무화과나무 말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바로 숨어버렸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청년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처럼 이 대쪽목사께서도 사랑의 목회자로 방향전환하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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