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유니온교회 원로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교환교수)

예수님의 생명이 태어난 과정을 연구해 보면 가슴 조마조마한 대목들이 여럿입니다. 마치 바람 앞에 촛불이었습니다. 아니 폭풍 앞에 촛불이라 해야 합니다. 그것도 광풍 곧 미친 바람이었습니다.
헤롯왕의 칼끝이 아기 예수의 목을 싹뚝 잘라내려고 했습니다. ‘위대한 생애’라는 예수님의 전기작가로 유명한 오우슬러는 헤롯이 암살단을 이집트에까지 파견했다고 적었습니다. 헤롯은 자기 정권 유지를 위하여 장모도 죽이고 아내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의 모가지도 잘라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게 미친 바람 아니고 무엇입니까? 신학자들이 자주 헤롯대왕(Herod, the Great)이라고 호칭합니다. 물론 그 아들들도 헤롯, 손자들도 헤롯이어서 구별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나는 반대합니다. 대왕은 무슨 대왕입니까? 굳이 대왕을 붙이려면 ‘악대왕’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베들레헴 일대의 모든 어린 아기들을 무참하게 죽였으니까요.
아기 예수님의 목숨이 폭풍 앞에 촛불 같았다는 것은 이것 말고도 여럿입니다. 약혼한 처녀가 아기를 가졌으니 남편 요셉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동네 사람들의 돌에 맞아 어머니와 함께 돌무덤에 묻힌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임신한 몸으로 왕복 5백 리 넘는 길을 걸어 엘리사벳에게 다녀왔습니다. 게다가 그런 여행을 출산 가까운 때에 베들레헴까지 또 한 번 가야 했습니다. 유산할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했습니다. 만약 나귀를 타고 갔다면 더욱 위험합니다. 특히 그때 마리아의 나이가 열다섯 전후여서 아기의 건강충실도가 나이였습니다.
그때가 겨울이어서 몹시 추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숙소로 쓸 방이 없어서 산모는 마구간이나 혹은 구유들이 있는 앞마당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아기를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다 뉘었겠습니까?
이집트로 도망가는 길도 험악했습니다. 밤에는 너무너무 추운 사막길이었습니다. 사나운 짐승들도 있었고, 강도떼의 위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옆에 달려 있던 강도들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사랑하시고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신32:10; 시17:8). 아기 예수님의 목숨이 만의 하나 꺼져 버린다면 오래 전부터 수립해 놓으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와 그리고 만물을 구원하실 계획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음식도 함께 나누고 선물도 교환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할 기도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꼭 넣어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가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이 완수될 때까지 눈동자처럼 지켜주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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