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시카고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서 사진을 찍고 그 배경에 대해 들어 보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미시간 애비뉴 한복판에 있는 워터 타워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871년 10월 8일 시카고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불은 오랫동안의 건조한 날씨와 맞물려 이틀 동안 도시 전체를 태웠다고 하는군요. 3백여 명의 사상자와 10만여 명의 이재민, 현재 돈으로 수백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불바다에 이어 잿더미로 변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대화재 속에서도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이 바로 워터 타워라고 합니다. 소방용 물을 담고 있는 건물이니까 타지 않았냐구요? 아닙니다. 그 건물이 타지 않은 것은 목적과 기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무로 만들어진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석조 건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우선적인 것은 내가 누구냐 또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물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그 내용에 따라 환난과 역경의 때에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집니다.
제가 직접 찍은 사진 중에 절반은 살아 있고 절반은 죽어 있는 나무의 모습이 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며칠 후에 우연히 발견한 장면이었는데 20년생은 족히 될 만한 나무의 절반이 바람에 꺾이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원가지로부터 양분을 공급받지 못해서였을까요? 잎새는 노란색으로 바뀌며 비틀어져 있었고 줄기 끝은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나뭇가지와 잎새가 푸르름을 뽐내며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었습니다. 원가지로부터 꺾인 곁가지의 종말이었습니다. 나무를 보며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나는 뿌리에 얼마나 견고하게, 그리고 밀접하게 붙어 있는가?

바다거북이는 한 번에 1백여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바다 속에서 천수를 다하는 거북이는 그 중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힘차게 시작했지만 끝까지 살아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란 이렇게 쉽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과 열정을 가지고 출발선에 서는지요. 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불이 모든 것을 삼킬 때에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돌과 같이 타지 않는 속성으로 이루어진 인생이거나 아니면 원가지에 꼭 붙어 있는 곁가지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의 내면세계와 가치관, 신념의 내용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당신을 이루고 있는 것은 거짓입니까? 진실입니까? 전자라면 불과 바람에 온데 간데 없어질 것이요, 후자라면 훗날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준이 되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만약 완전한 진실로 자신의 삶을 채울 수 없다면 생명이라는 뿌리와 진실이라는 가지에 꼭 붙어 있는 가지라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백퍼센트 진실하지 못하니까요. 진실이 아니라면 진실이 주는 은혜를 공급받는 위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상태가 온전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적과 기능도 그 다음입니다. 중요한 것은 뿌리에 꼭 붙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양분 공급의 통로가 끊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생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올 한해 진실한 삶이 되던지  진실의 뿌리에 붙어 살던지 하십시오. 유혹과 환난 속에서도 견뎌 끝까지 남을 수 있는 비결은 강하던가 강한 것에 연결되어 있던가하는 것뿐입니다. 진실 그 자체가 아님을 아는 저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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