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유니온교회 원로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교환교수)

예수님은 바람 앞에 있는 촛불이었습니다. 바람 치고도 가히 폭풍급이었습니다. 아니 어떤 때는 미친 바람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가냘픈 촛불이었습니다.
 그 때 마리아는 열다섯 살쯤이나 되었을지요? 아직 건강한 아기를 낳기에는 너무 어린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만약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공개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당장에 돌로 쳐 죽일 판국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임신하자마자 세례자 요한을 임신한 엘리사벳을 찾아 갑니다. 그 거리가 약 250리 정도였습니다. 임신 초기인 여자가 유산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복 500리를 걸었습니다. 출산에 임박해서는 인구조사 때문에 또 베들레헴까지 280리 길을 걸어갔습니다. 혹은 나귀를 타고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예수님 운명이 위태 위태했습니다.
 게다가 임산부는 또 바깥 한 데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아기를 낳아 구유에 뉘었다는 말이 성경에 세 번이나 나오는 걸 보면 마리아는 말이나 나귀 곁에서 밤을 새웠나 봅니다. 계절은 추운  겨울인데도요.

  미친 바람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헤롯왕의 칼끝에 목이 잘려 피를 쏟고 죽을 뻔했습니다. 헤롯왕이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왕좌를 넘본다고 오해해서 왕후와 그 자식들까지 죽여 버린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인간머리였습니다. 다행히 그건 모면했지만 또 사막을 지나 먼 먼 나라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사나운 짐승들과 도적떼들이 들끓는 험악한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도적떼가 덮쳤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바로왕 군대가 홍해에서 몰사한 사건 때문에 유태인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오르던 나라 아닙니까? 또 미신이 들끓는 종교문화여서 하나님의 아들이 피난하기에는 안전지대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끝이 결코 아닙니다. 천사의 지시를 받고 유태인의 땅으로 가려고 하니 헤롯 아켈라오라는 더 잔인한 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예루살렘 지도자 2천 명을 처형했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몇 번씩이나 철렁철렁하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어찌 이리도 팔자가 기구해야 합니까?
 하지만 염려 푹 놓으십시오. 예수님의 생명은 미친 바람이 천만 번 불어온다 해도 결코 꺼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체험하신 것은 그 분의 사명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죽음의 위기는 오히려 ‘위대한 기회’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도록 충분한 기초공사를 끝내시기 전에는 결단코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싸개(삼상 25:29)로 보호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죽음을 완전정복하시기 전까지는 어떤 위험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습니다. (신 32:10; 시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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