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연극이 끝나고 조명과 박수의 여운이 사라지면 무대에 홀로 남은 배우에게 공허함이 밀려온다고 합니다. 갑자기 생긴 시간과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한동안 안절부절한다는군요. 그래서 회식을 하고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애프터 모임을 갖는 것이 감정의 연착륙을 위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았던 순간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성공의 흔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래서 뭔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자신의 전기가 기록되고 널리 읽혀지기를 소망하지요. 그런데 과연 그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의 됨됨이는 그가 뭔가에 몰두해 있을 때 보여지는 모습이 다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향해 온몸을 던져 헌신할 때의 모습도 아닙니다. 물론 부지런한 모습, 성실한 자세, 열정적인 도전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 사람 자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단지 목표 안에 녹은 그 사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꾸며진 그 사람일 뿐입니다.

진정한 그 사람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거나 사람들 앞에 서 있을 때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드러납니다. 홀로 있을 때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입니다. 홀로 있을 때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자유할 때입니다. 꿈도 목표도 그를 지배하지 못할 때이지요. 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가질 필요가 없는 때입니다. 도전해야 할 대상이 사라져 허탈하고 공허할 때, 그래서 자신 안에 있는 생각과 본능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할 때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바로 당신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목표나 제도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자신이 아니라 원초적인 자아가 본색을 드러내는 때입니다. Doing으로서가 아니라 Being으로서의 자신의 모습말입니다. 훈련받고 성숙해진 사람이라면 성숙의 진정성을 알 수 있는 때입니다. 당신은 홀로 있을 때의 모습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요?

왕의 자리에 올라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든 다윗은 이제 일일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그는 어느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시간을 겪지요. 왕의 홀을 내려놓고 존경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국사에 대한 책임감과 백성들에게 베풀어야 할 선정의 중압감이 사라졌습니다. 피로감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이어 외로움과 공허함이 자신을 채워 줄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그 때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뭔가를 찾아 방황합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지붕 위를 서성거렸고 주위를 둘러보았지요. 자신의 새로운 목표가 되고 시간과 힘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와 마음이 움직이자 다시 온 힘을 기울여 그것에 몰두했습니다. 자신을 잃어 버리며 선택한 삶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의 시대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까지 그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지요.

체면의 권좌에서 내려와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 때, 목표가 사라져 갑자기 공허해질 때, 사람들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독히 외로울 때 사람들은 무언가로 그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자신으로 그 공허함을 채우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그 순간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연인이나 꿈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불타는 사랑이라 말하기 전에 혹 그것이 중독이 아니었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열정이라 자랑하기 전에 집착과 몰입이 아니었나 살펴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공의 자리에 올라 있는 당신은 당신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진정한 당신은 공허함과 외로움의 순간에 반응하는 당신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이 진정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남을 위해 살지 말고 당신 자신을 위해 진정한 삶을 사십시오. 자기가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거짓은 하루 아침에 무너집니다. 홀로 있을 때는 무엇보다도 당신으로 당신을 사랑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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